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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악마

순백악마 7장 - 地下城 : 美丽新世界 멋진 신세계 6

제7장 멋진 신세계 (6)


식빵의 사망 현장이 지나가고, 산소 부족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던 크로우는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안정을 되찾았다. 옆에 진주가 있었기에, 그는 일단 죽은 자의 손에 손을 대지 않았다.
 
진주가 보기에 크로우는 그저 몇 초간 멍하니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바보가 멍을 때리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기에 그녀는 개의치 않았고, 작은 눈은 오로지 고기 통조림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진주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바보 오빠를 향해 진심 어린 걱정이 담긴 질문을 던졌다.
"오빠, 이거 다 먹으면 목마르지 않을까? 물 좀 마실래?"
 
크로우는 어쩔 수 없이 주의력을 산 자들의 세계로 돌려놓아야 했다. 활기차게 살아 움직이는 어린 소녀가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측은한 마음이 든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비극이 따로 없네.'
 
아래층의 유모들은 이미 식사를 마친 상태였다. 커다란 통조림 한 통을 더 가져와도 다 먹지 못할 정도로 배가 불렀던 크로우는, 마침 비추들이 배급을 받는 것을 보고 다른 어린 친구 하나를 떠올렸다. 그는 바보의 신분에 어울리는 간단한 단어들로 표현했다.
"식스 같이 찾으러 가자."
 
"식스?"
진주는 멍해지더니 대답했다.
"걔 어제 떠났잖아. 오빠 돌아오는 길에 못 만났어? 소피아 아가씨가 데려갔는데."
 
크로우 역시 멍해졌다. 그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식스를 포함한 아이들 몇 명이 커다란 챙 모자를 쓴 아가씨를 따라갈 때 그에게 인사까지 건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그 후로 계속 돌아오지 않았단 말인가? 외박이라도 한단 말인가?
 
진주 동생은 그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오해하고는,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큰 원을 그리며 설명했다.
"소—피—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능하며 가장 예쁜 큰 챙 모자를 가진 아가씨 말이야. 회색 쥐 가족의 대스타이자 위대한 하모니카의 여신님, 이제 생각났어?"
 
크로우는 몸을 뒤로 젖혔다.
'세상에, 그 아가씨의 수식어는 머리 위에 얹힌 그 잿빛 털 뭉치보다도 더 길구먼!'
 
"정말이지, 소피아 아가씨가 오빠를 예뻐해 준 보람이 없네."
진주는 그를 한 번 흘겨보더니, 끊임없이 소피아 아가씨의 위대함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쥐머리 아가씨의 그 커다란 모자는 뼈대 있는 가문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위대한 회색 쥐 가족의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오직 가장 가문을 빛낸 자의 머리 위에만 얹힐 수 있었다. 소피아는 오기를 품고 '지상'에 있는 학교에 합격했기에 이번 세대의 '모자 쓴 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전공이 '가축 사육학'인데, 우리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연구하는 전공이야……. 아, 맞다. 오빠가 방금 식스라고 했지."
진주는 장황하게 늘어놓던 대화가 옆길로 샌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가볍게 덧붙였다.
"소피아 아가씨가 식스 일행을 데리고 출고하러 갔어, 바보 크로우 오빠야."
 
크로우의 바보 같은 표정은 변함이 없었으나, 눈동자만은 아주 살짝 수축했다.
 
진주는 이를 알아채지 못한 채 기분 좋은 듯 말을 이었다.
"식스는 몸무게가 계속 미달이었고 눈도 침침해서 다들 걔는 틀렸다고 생각했거든. 나 그때 정말 걱정 많이 했어. 어쨌든 우리 몇 명은 다 유모가 낳은 애들이라 다른 비추들보다 사이가 좋잖아. 다행히 공정하신 소피아 아가씨가 휴가 때 집에 오셨을 때 식스를 자세히 검사해 보시더니, 식스는 타고난 골격이 작아서 체중이 낮은 게 정상이라고 하셨어. 허리둘레도 이미 기준치에 도달했으니, 찰스 씨가 특별히 걔를 출고시켜 주신 거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마치 광신도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소피아 아가씨는 세계 최고의 하포크라테스인이야!"
 
크로우는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의구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출고'라는 단어에 내가 모르는 다른 뜻이라도 있는 걸까? 좋은 일인 건가? 이 아이의 말투는 마치 친동생이 명문 초등학교에 합격이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인데?
 
"어휴, 오빠는 아무것도 모른다니깐."
진주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다시 고기 통조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내 기억에 오빠 고기 안 좋아했던 것 같은데."
 
"……."
좋다. 그는 단것도 안 좋아하고 고기도 안 좋아하니, 그냥 하수구 냄새 나는 공기나 마시며 살아야겠다. 이 녀석들은 정말이지 한 배에서 나온 남매가 맞구나.
 
그는 기운 없이 통조림을 건네주었고, 갈색 머리 소녀는 환호성을 지르며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둔 숟가락을 꺼냈다. 이제 막 숟가락을 꽂으려던 찰나, 등 뒤에서 벼락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진주!"
 
진주는 깜짝 놀라 움찔하며 숟가락을 땅에 떨어뜨렸다.
 
백작이 다가와 진주의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숟가락을 짓밟고는 머리 위에서부터 욕설을 퍼부었다.
"너는 네 밥그릇도 없어? 왜 남의 밥을 구걸하고 다녀!"
크로우도 깜짝 놀랐다. 지난번에 그는 병원에서 식스에게 통조림을 나눠주었지만, 그때 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어나, 이 염치없는 녀석!"
백작은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소녀를 발로 찼다.
"마당이나 돌고와. 네가 한 번만 더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수다 떠는 소릴 들으면, 네 혀를 잘라버릴 줄 알아라."
 
연배가 좀 있는 여자 둘이 서둘러 달려와 진주를 끌어당겼다.
"어서 가자, 유모 말 들어."
"네 나이 때는 적게 먹어야 해. 우리는 저 위층 애들이랑 다르단다. 너무 살찌면 안 돼. 유모가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크로우는 이 안에 어떤 금기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공범으로서 조용히 매 맞을 차례를 기다렸다. 아침부터 이미 여러 대 맞았으니 한두 대쯤 더 맞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백작은 진주를 쫓아버린 뒤 크로우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바로 몸을 돌려 가버렸다.
 
크로우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한참 뒤, 그는 생각에 잠긴 채 고기 통조림을 한 입 떠먹어 맛을 보고는 다시 조용히 뱉어냈다. 그리고 통조림을 한쪽에 치워두고 구석으로 몸을 웅크린 채, 아무렇지 않게 구부린 무릎 위에 작은 팔을 얹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손가락은 시공간과 생과 사를 꿰뚫어 식빵에게 닿았다.
 
방금 식빵에게 닿은 손은 곧 그녀의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마음 속에 잠식당했다. 이런 상황은 사실 꽤 흔하다. 인간의 의식은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기에, 매 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피해자의 유언은 구분하기 쉽다. "살려줘"가 아니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널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의 외침이 귀를 찢을 듯한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세상을 모르는 아이들의 생각은 단순하여 쥐꼬리처럼 가는 시냇물같으며, 마지막 생각은 물 위에 떨어진 낙엽 같아서 그것이 떠 있든 가라앉아 있든 한눈에 명확히 드러난다. 천수를 누리고 죽은 노인의 생각은 평화롭고 넓은 강물 같고, 유언은 그 위를 반복해서 맴도는 작은 배와 같다.
 
가장 성가신 경우가 바로 식빵 같은 아이들이다. 반쯤 자라 세상을 조금은 알지만 다 알지는 못하는 나이, 생각은 많지만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녀가 죽기 직전에 낸 목소리는 마치 간섭이 심한 라디오처럼 잡음으로 가득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밀하게 파헤쳐야만 그 안에서 반복되는 진짜 "유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죽고 싶어."
 
이건 아니야, 너는 이미 죽었어.
 
"내 작은 꽃바구니를 아직 다 못 짰는데……."
 
이걸까?
 
크로우는 고개를 들어 철창 위에 걸린 작은 꽃바구니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이미 식빵을 대신해 완성해 두었다. 만약 이것 때문이라면 이 의뢰는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잠시 더 기다렸다. 이 생각은 금세 가라앉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크로우는 서두르지 않고 진짜가 드러나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다. 마당에서 원을 그리며 운동하던 임산부 대열이 그의 앞을 세 번째 지나갈 때쯤, 그의 손가락 끝에 드디어 다시 움직임이 느껴졌다.
 
"소피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가녀린 부름에, 라디오 음악 소리에 맞춰 까딱이던 크로우의 발이 멈췄다.
 
"소피아 아가씨……."
 
또다시 나타났다.
 
크로우는 귀를 기울였다.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분명 이것이라고.
 
"……소피아 아가씨는 나를 사랑했을까?"
 
어?
 
크로우의 팔이 무릎 위에서 미끄러졌다.
 
누구? 뭐를?
 
그는 갑자기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아 그 뒤의 단어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때, 칠흑의 계약이 나타났다.
 
"가야 해…… 파이브(小五)가 마지막으로 간 곳에 가서, 나 대신 소피아 아가씨가…… 나를 사랑했는지…… 물어봐 줄래?"
 
"거기가 어딘데?"
 
그러나 죽은 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유언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녀는 생전에 그곳이 어디인지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 그곳은 베리 농장 너머의 세상이었으니까.
 
이 임무를 완수하려면 먼저 크로우는 '파이브'가 누구인지, '마지막으로 간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야 했다. 그다음, 동서남북도 구분 못 하는 바보가 베리 농장을 넘어 탈옥해야 했다. 그 맹렬한 백작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탈옥 후에는 더 가관이었다. 그 큰 모자 아가씨를 찾아가, 캐붕의 위험을 무릅쓰고 죽은 자를 대신해 그 진부한 질문을 던져야 했다.
 
'이게 정말 바보가 할 짓인가?'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생각했다.
"말도 안 돼!"
 
그러고 나서 크로우는 죽은 자의 손을 아래로 홱 낚아챘고, 칠흑의 계약이 그의 손바닥으로 단숨에 파고들었다. 젠장! 원한의 바다를 휘젓고, 사랑의 하늘을 찌르는 이 일에 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밖으로 나가야 하고, 그 큰 모자 아가씨도 만나야 한다. 담을 넘거나 땅굴을 파서 탈옥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칩도 박혀 있는 데다, 이 쓸모없는 몸으로는 그런 일을 할 힘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 겁먹을 건 없었다. 방법은 언제나 고난보다 많은 법이니까.
 
크로우는 의욕이 솟구쳐서 목을 몇 번 돌리며 움직였는데, 마치 한데 엉겨 붙은 뇌수를 흔들어 고르게 섞으려는 것 같았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고기 통조림 그릇을 들어 올렸다. 아침 일찍 비추의 저울 위에서 쟀던 자신의 몸무게를 떠올리며 대략 양을 가늠해 보더니, 통조림의 3분의 1을 먹었다.
 
일을 마친 그는 우아하게 옷 소매로 입가를 닦고, 담벼락 아래에 평온하게 기대앉아 몸을 고정했다.
 
"치사량 계산에 착오가 없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소피아 아가씨를 만나기도 전에 의뢰인을 먼저 보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친애하는 '엄마'가 왜 자신을 독살하려 했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될 터였다.
 
그는 한 무리의 사람들의 비명 소리 속에서 의식을 잃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병원의 그 익숙하고 구부러진 수도관을 마주했다. 이번에는 꿈을 꾸지 않은 듯해 조금 허탈한 기분도 들었지만, 눈 깜짝할 새에 다시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운이 좋았고, 계획은 순조로웠다.
 
크로우의 기척을 느낀 쥐머리 몇 개가 우르르 몰려왔고, 찰스 씨가 흥분해서 튀긴 침방울이 크로우의 얼굴을 덮었다.
"여러분 보세요, 그가 깨어났어요!" 크로우의 시선은 소피아 아가씨의 큰 챙 모자 위에서 잠시 멈췄다가, 이내 바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은 시작은 성공의 절반이었다!
 
값비싼 가축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가문 내에서 학력이 가장 높은 우등생 전공자가 당연히 달려와야 했다. 소피아 아가씨 외에도 찰스 씨는 꽤 큰 비용을 들여 몇 명의 베리 수의사들을 초빙해 협진을 의뢰한 상태였다.
 
쥐 세 마리에 눈이 여섯 개, 이 전문가들은 학술적 노선이 서로 달라 제각기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찍찍거리고 시끄럽게 뒤엉켜 싸워댔다.
 
강호파 전문가 갑이 단언했다.
"당신네 집 종공들이 하나같이 이 모양인 걸 보니 내가 딱 알겠네, 이건 분명 베리 역병이요!"
 
학구파인 소피아는 이론적으로 맞받아쳤다.
"우리 베리 농장 안에는 가장 선진적인 방역 관리 시스템이 가동 중이라 절대 그럴 리 없어요. 제 추측으로는 이번 베리 사료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지……."
 
전문가 갑은 코웃음을 쳤다.
"시스템은 무슨, 터무니없는 헛소리요. 이런 일은 내가 보면 한 눈에 바로 안다오."
 
소피아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응수했다.
"길도 제대로 못 보시는 분이 병을 보는 눈은 참 예리하시네요."
 
전문가 을이 옆에서 발톱을 짚으며 한참 동안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더니[각주:1], 그제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둘 다 틀렸어. 내가 보기엔 당신네 축사 위치가 문제야. 지세가 너무 오목해서 음기를 모으니 종공이 먼저 해를 입는 거라고."
 
"헛소리 마! 찍!"
 
"삼촌, 어디서 저런 미친 사람을 데려온 거예요?"
 
"그만 싸워, 그만 좀 싸우라고!"
 
"무지한 범부들 같으니……."
 
한창 아수라장일 때, 또 몇 명의 쥐인간들이 들것을 메고 달려 들어오며 비명을 질렀다.
"이걸 어쩌죠? 이 녀석도 죽게 생겼어요!"
 
"뭐라고?"
허둥대던 찰스 씨가 고개를 돌려 보더니 절망적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비명 소리가 그대로 뭉크의 <절규> 형상이 되었다. "맙소사!"
 
크로우는 그 소리를 따라 시선을 떨어뜨렸고, 들것 위에서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그 종공'을 발견했다.
 
베리 병원에는 병상이 단 하나뿐이라 '그 종공'은 바닥에 내려놓아질 수밖에 없었고, 쥐 인간들이 달려들어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미동도 없이 그들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그의 고개가 크로우 쪽으로 살짝 기울어졌고, 짙은 갈색 눈동자가 크로우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눈동자가 동시에 변했다. 한쪽은 마치 그윽하고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피어난 꽃처럼 천천히 흩어졌고, 다른 한쪽은 그에 맞춰 변형되며 이 말 한마디 못 하는 생명이 마지막 여정을 마저 가는 것을 배웅했다.
 
비록 쥐 인간들이 전기톱 협주곡 같은 소음을 내며 소란을 피웠지만, 이 성대한 구조 작업은 여전히 실패로 끝났다.
 
찰스 씨는 허리를 짚고 씩씩거리며 울상을 지었다.
"내 베리야! 내 보물아! 이건 설상가상 아니냐? 아예 이 늙은이 숨을 끊어놓지 그러냐!
 
"찰스 어르신, 이…… 사체는 어떡할까요?"
 
찰스 씨는 절망적으로 털이 난 앞발을 휘둘렀다.
"깨끗이 씻어서 고기와 가죽을 분리해 처리해라. 일반 고기 값으로 팔아버려."
 
소피아 아가씨는 무언가 말하려다 머뭇거렸으나 끝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삼촌, 걔 다리 썩은 거라 고기가 다 상했을 텐데……."
 
"상한 고기는 도려내면 되지, 다 상한 건 아니잖니! 다리 썩은 건 그냥 떨어져서 죽은 거라 하면 된다."
선생은 조카딸을 째려보며 말했다.
"융통성이라고는 없구나. 책만 읽더니 바보가 다 됐어—— 지독한 냄새가 나니까 어서 끌고 가라! 내 보물들까지 오염시키지 말고!"
 
그때 쥐 인간들은 큰일이 났음을 발견했다. 줄곧 온순하던 '모범 종공' 크로우가 자극을 받은 듯 치료에 협조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숨이 넘어가려던 환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펄쩍펄쩍 뛰더니, 좁은 병원 안에서 쥐머리 무리와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크로우는 마치 시커먼 진흙 미꾸라지처럼 유연하고 비정상적으로 민첩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는 도망치는 경험이 아주 풍부해 보였고, 숙련되게 좌우로 파고들며 쥐 인간들의 동작을 정확히 예측해 큰 머리 쥐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흥이 가시기도 전에 크로우의 심장에 갑자기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는 비틀거리다 벽에 부딪혔고, 찰스 씨에게 뒷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크로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을 뻣뻣하게 세우더니 온몸을 경련하며, 최소 10년은 족히 자해 공갈을 해온 듯한 정교하고 화려한 연기를 선보였다. 선생은 혼비백산하여 급히 손을 놨고, 크로우는 그 틈을 타 몸을 낮춰 미끄러지듯 기어갔다. 그러고는 반쯤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돌진해 아가씨의 굵은 털다리를 덥석 붙잡았다.
 
소피아를 제외하고 크로우는 어떤 쥐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누군가 잡으려 하면 피하고, 피하지 못하면 발작을 일으켰다. 이 보물을 달래도 보고 겁도 줘 봤으나 말이 통하지 않았고,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한데 강제로 손을 쓸 수도 없으니 선생은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고 머리 위의 회색 털은 더 듬성듬성해졌다.

"그만!" 마침내 참다못한 아가씨가 입을 열었다.
"그냥 제 거처로 데려가서 며칠 기를게요."
 
크로우는 슬쩍 그녀의 다리털 사이로 눈 하나를 내밀어 살폈다. 쥐머리 아가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저도 휴가라 별일 없기도 하고, 예전에 식빵이가 쓰던 물건들…… 보금자리나 밥그릇 같은 게 다 그대로 있으니까요. 정리하고 갑시다."
 
식빵처럼 집에서 태어나 우리에서 길러지는 종모는 외부로 판매되지 않으며, 불임 시술을 받기 전까지는 베리 농장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베리 농장 밖의 장소를 알 기회가 있었을까?
 
베리 농장의 주인은 분명 찰스 씨였지만, 식빵이 늘 마음에 두고 잊지 못한 대상은 소피아 아가씨였다. 여기서 크로우는 어떤 상황을 떠올렸다. 시골의 축산 농가 아이들이 마음에 든 병아리나 어린 양을 보면 가끔 품에 안고 돌아가 애완동물처럼 기르곤 하는데, 이런 소형 애완동물은 '임시 겸직' 상태일 뿐 '본업'은 여전히 가축이다. 식빵의 유언을 듣는 순간 크로우는 짐작했다. 식빵은 분명 아가씨의 겸직 애완동물이었을 것이라고. 그러니 쥐머리 아가씨 앞에서 잠시 체면을 버리기만 하면 자신을 그녀의 쥐 둥지로 데려갈 터였다. 계획대로, 그는 다시 한번 도박에 성공했다.

  1. 원문은 손가락 마디를 짚으며 점을 치는 행위(掐算)를 쥐 캐릭터의 특성에 맞춰 발톱으로 변형해 표현한 것. 전문가 을이 의학적 근거가 아닌 풍수지리나 미신에 근거해 진단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해학적인 묘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