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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악마

순백악마 6장 - 地下城 : 美丽新世界 멋진 신세계 5

제6장 멋진 신세계 (5)


크로우가 "엄마!"라고 부른 것은 나름의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었으나, 상대방에게는 전혀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백작은 잠시 문앞에 멈춰 섰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서슬 퍼런 기세에 크로우는 저녁밥으로 나온 통조림을 포기해야 했다. 종잇장처럼 약해 빠진 몸인 그는 무시무시한 유모에게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맛도 없는 개사료 같은 밥 반 그릇을 묵묵히 넘길 뿐이었다.
 
지하성의 밤은 생물학적 주기 대신 조명탄 같은 불빛에 의지해 흐른다. 베리들의 수용소인 '베리 농장'에 조명이 꺼지자, 층마다 울려 퍼지던 소란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수용소의 행복 지수는 꽤 높았는데, 크로우의 관찰에 따르면 이곳에서 노래도 부르지 않고 웃지도 않는 사람은 만인의 미움을 받는 그 바보 종공과 백작뿐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관리자로서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된 하루를 마친 이 노동자 여성은 단 하나뿐인 침대를 연약한 바보 아들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낡은 담요를 깔고 바닥에 누웠다. 그 자리는 공교롭게도 전임 유모가 죽어 나갔던 바로 그 자리였다.
 
어둠 속에서 크로우는 시체처럼 꼼짝 않고 누워 불면증에 시달리며, 자신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백작의 시선을 견뎌냈다. 낡은 신문을 즐겨 보느라 밤눈이 어두워진 백작은 크로우를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하며 표정 관리를 포기한 듯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살의와 온화함 사이를 기묘하게 오갔는데, 방금 전까지 머리통을 깨부술 것 같다가도 금세 다정하게 얼굴을 닦아줄 것처럼 변했다. 크로우는 속으로 기막혀했다.
'세상에, 나 같은 바보한테 어쩌다 이렇게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감정을 품게 된 거야?'
 
이 의외의 살인 사건은 몇 가지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이를테면 왜 찰스 씨가 백작을 유모로 세웠느냐는 점이다. 답은 간단했다. 그녀가 가장 흉악했기 때문이다. 쥐 주인들 입장에서 전임 유모는 늙어서 죽어도 그만인 존재였고, 새로운 실력자인 백작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유혈 사태는 '가축들끼리의 서열 정리' 정도로 치부되었다. 가축이 다른 가축을 죽인다고 해서 경제적 손실이 크지 않은 이상, 주인들은 누가 살아남든 그저 관리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가축들 사이의 '정의' 따위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크로우에게는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백작은 왜 굳이 그 시점에 전임자를 죽여야만 했을까?
 
전임 유모가 백작을 미워하긴 했어도, 아이를 받는 그 순간만큼은 살의가 없었다. 그랬다면 칼을 든 산파를 상대로 백작이 무방비하게 누워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이 사건은 백작의 철저한 계획범죄였다.
 
유모라는 '양치기 개' 역할은 대개 가임기를 넘긴 암컷 가축에게 주어지는 자리다. 백작은 이미 이곳에서 수많은 아이를 낳았고 전임자와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을 텐데, 왜 굳이 출산과 살인이라는 두 가지 고위험 과제를 한꺼번에 수행한 것일까? 당시 뱃속에 있던 아이가 지금의 '에이트(小八)'라고 해도 벌써 9~10개월이 지났다. 그녀는 왜 그 위험을 무릅쓰고 서둘러 유모 자리를 찬탈했을까? 단순히 쥐 인간들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였을까?
 
백작은 온통 수수께끼투성이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크로우가 방금 외쳤던 "엄마!"라는 호칭이었다. 그것은 뚱보 식스 같은 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할 호칭이었고, 백작은 분명 감정의 동요를 보였음에도 전혀 놀라지는 않는 기색이었다.
 
크로우는 마음속으로 이런 의혹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잠시 더 기다렸다. 이윽고 바닥에 잠자리를 폈던 백작이 몸을 뒤척였고, 사람을 좌불안석으로 만들던 그 시선이 멀어졌다. 그는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백작이 자신의 머리통을 깨부술 생각이 없음을 눈치채고, 마음 편하게 사지를 뻗은 채 3초 만에 잠에 빠져들었다.
 
아마 백작의 침대가 병원 침대보다 더 딱딱했던 탓인지, 아니면 움직일 때마다 '삐걱' 소리를 냈기 때문인지, 크로우는 잠자리가 편치 않아 꿈자리마저 뒤숭숭했다. 꿈속의 그는 병도 고통도 없었으며, 5분 만에 치킨 한 마리를 해치웠다. 뼈를 뱉어내는 솜씨가 동네 개보다 더 날렵했다.
 
그때 어떤 사람이 그의 옆에 앉았다. 형체는 흐릿했으나 매우 따뜻한 기운을 풍겼는데, 마치 아버지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상대방을 멀리하려 했지만 어깨가 굳어버렸고, 상대는 마치 닭을 주무르듯 강압적으로 그의 어깨를 눌러왔다.
 
"정말 맛없네."
그는 마지막 뼈 한 조각을 내던지며 짐짓 모르는 체 불평을 늘어놓았다.
"당신들 식당은 닭한테 방탄복이라도 입히는 거야? 튀김옷을 이렇게 두껍게 입혀놓으니 내 입천장이 다 까졌잖아."
 
"아, 정말 미안하구나." 그 사람은 온화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곳으로 오게 하느라 제대로 된 대접도 못 했네. 다음번엔 내가 밖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주마. 먹고 싶은 게 있니?"
 
"똥이나 먹으라지." 그는 마치 반항기 가득한 중2병 환자처럼 쏘아붙였다.
"무슨 놈의 다음번이야!"
 
상대방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전히 자애로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정식으로 말해주마. 이곳에는 네가 도와줘야 할 일이 아주 많단다. '연합회'는 너를 '특구'에서 차출해 오기로 결정했고, 내가 네 보호자가 될 거야."
 
"감·시·인 말이지."
 
"그 명칭이 더 마음에 드니? 그것도 좋고, 아니면 그냥 나를 '늙은이'라고 불러도 된단다."
 
크로우는 안절부절못하다가 툭 내뱉었다.
"당신들, 내 몸에 있는 그 물건이 필요한 거면 그냥 뽑아가면 그만 아니야?"
 
상대방은 침묵했다.
 
그러자 그는 더욱 가릴 것 없이 말을 내뱉었다.
"연합회 놈들도 이제 참을 만큼 참았나 보지? 어차피 나도……."
 
"얘야." 상대방이 그의 말을 끊었다.
"내 곁으로 오고 싶지 않니?"
 
그는 더욱 안절부절못하며, 남들이 보기에 얄미울 정도로 능글맞은 말투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당신 곁에 있으면 얼마나 영광인데요. 제 이름도 모를 조상님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걸요……."
 
"하지만 내 생각엔, 너는 내가 여기 앉았을 때부터 줄곧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생각만 하는 것 같구나."
 
"……."
 
그 성격 좋은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밀어 열고 밖을 한번 내다보더니, 몸을 돌려 그에게 말했다.
"여긴 2층이고, 밑에 풀밭도 꽤 푹신해 보이네. 뛰어내리고 싶으면 뛰어내리렴. 뛸 거니?"

그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은 역광을 등지고 창가에 서 있어서 여전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뛸 거니?"라는 두 글자만이 귓가에 계속 맴돌며 고막을 울려댔고, 결국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크로우가 눈을 뜨자, 이미 천장의 조명등이 환하게 켜져 아침이 밝아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베리 농장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고, 백작 역시 일찌감치 일하러 나간 뒤였다. 그녀가 비록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아이가 늦잠 자는 것까지 방해하지는 않았으니, 이 점만 봐도 이 엄마는 '별점 5점'을 받을 만했다.
 
꿈은 마치 한낮에 찾아온 신선처럼 기억 속에서 빠르게 물러나 눈 깜짝할 새 자취를 감췄다. 크로우는 침대 가에 앉아 저혈압으로 인한 어지럼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베리 농장에 울려 퍼지는 방송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경쾌한 음악 사이사이로 쥐 주인의 부드러운 설교가 섞여 나왔다. 방송의 요지는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니 삶에 늘 감사해야 하며, 뇌 속의 이상한 생각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잡생각'이야말로 베리 뇌암의 증상이며 치사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란다.
 
"……."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문맹인 바보들을 속이지 마라. 뇌암에 그런 증상도 있었나?
 
백작의 방에는 간소한 수도꼭지가 있었다. 그는 잠시 가만히 앉아 있다가 기운을 내 대충 씻고는, 목에 달린 칩을 이용해 계단참의 문 잠금장치를 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서는 비추들이 이미 일어나 배급받을 비추들을 기다리며 긴 줄을 서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송이 흘러 나왔다.
"노래를 많이 부르고, 헛소리는 줄여라. 질문은 단절하라. 노래는 정신을 맑게 하지만 말수가 많으면 기운이 상하고, 질문은 위험하다."
 
마당의 어른과 아이들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일제히 따라 읽었다.
"노래는 정신을 맑게 하지만 말수가 많으면 기운이 상하고, 질문은 위험하다!"
 
크로우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멍청하게 웃으며 길을 막고 서 있다가 매를 벌었다.
 
백작이 채찍을 한 번 휘두르자 크로우는 별일 없었지만, 밥을 타려던 비추들은 모두 겁에 질려 즉시 조용해졌고 아이들은 방송을 따라 읽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끝났다. 아이들은 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가 밥을 남기는지 감시했고, 남기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유모에게 보고해 채찍 세례를 받게 했다. 크로우는 대체 어떤 밥이길래 사람을 저렇게 살찌우나 궁금해하며 한 아이의 그릇에서 밥알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입에 넣기도 전에 신고를 당했고, 비추들의 사료는 맛도 못 본 채 채찍질만 한 차례 더 당해야 했다.
 
바보 아들을 때려준 뒤 백작은 비추 한 무리를 몰아넣고, 또 다른 무리를 아래층으로 내려보내 줄을 세웠다. 크로우는 그제야 급식기 옆에 아주 고급스러운 저울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위에 올라가면 각종 신체 데이터를 자동으로 스캔했고, 비추들은 먼저 몸무게를 잰 뒤 저울의 지시에 따라 밥을 타야 했다.
 
크로우는 잠시 관찰하다가 백작의 눈을 피해 슬쩍 비추 무리에 끼어들었고, 저울 앞에서 '대변신' 쇼를 선보였다.
그러자 저울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대상의 키가 이미 표준 상한선을 초과함. 신속히 처리하십시오! 신속히 처리하십시오!"
 
"호오."
제법 지능적인 기계인걸.
 
백작이 고개를 돌리자 크로우는 냅다 도망쳤지만, 자신의 폐 성능을 과대평가한 탓에 몇 발자국 못 가 숨이 차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결국 남성 숙소 입구에서 백작에게 덜미를 잡혀 또 한 대 맞았다.
 
주변이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도 남성 숙소의 형제들은 그저 무덤덤하게 누워 있었다. 뼈만 앙상한 그들의 엉덩이는 마치 등받이 의자에 뿌리라도 내린 듯 보였다.
 
백작은 크로우의 귀를 잡아당기며 의심스럽게 그를 살폈다.
"너 오늘 왜 이러지?"
 
크로우는 대답 대신 맑고 멍청한 눈동자로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백작의 얼굴에 순식간에 짜증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들고 있던 개사료 한 그릇을 크로우에게 냅다 밀어주고는, 소파에 누워 있는 종공을 가리켰다.

"저놈에게 이거 주고 얼른 꺼져."

 

크로우는 칩을 이용해 철문을 열고 남성 숙소로 들어갔다. 그 종공 형씨에게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코를 찌르는 악취에 정신이 아득해질 뻔했다. 온종일 누워만 지내느라 이미 욕창이 생겼고, 짓무른 살점 사이로는 구더기가 꿈틀대며 기어 다녔다. 크로우는 가까이 다가가서야 형씨의 바지에 남은 얼룩이 무늬가 아니라 배설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련하게도 이 남자는 이미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백작이 직접 오기 꺼려했던 이유가 있었다.

 

크로우는 발끝으로 까치발을 들고 동류의 얼굴 앞으로 다가가 냄새를 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공의 몸에서는 단순한 악취가 아니라 이미 죽음의 썩은 내동이 풍기고 있었다. 위대한 찰스 씨의 판단이 맞았다. 그는 곧 죽을 것이다.

 

크로우는 경건하게 밥그릇을 종공 형씨의 얼굴 앞에 바치고는, 플라스틱 숟가락을 위로 향하게 밥 속에 꽂아 넣으며 마치 제사를 지내듯 깍듯하게 절을 올렸다.

 

형씨는 크로우와 밥그릇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그저 멀리 떨어진 철창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크로우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철창에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꽃바구니가 걸려 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짚줄로 엮은 작은 인형과 포장지로 접은 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종공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을 내뱉었다. 크로우가 귀를 가까이 대고 자세히 들어보니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풍경…… 풍경…… 풍경……."

 

풍경(風鈴)?

 

크로우는 꽃바구니로 다가가 한참 동안 방울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어 바구니를 떼어내려던 찰나, 누군가 그의 손을 찰싹 내리쳤다. 언제 왔는지 모를 백작이 고기 통조림 한 통을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저리 가서 먹어. 또 방해하면 죽여버릴 거다."

 

말을 마친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크로우는 손에 든 통조림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백작이 건넨 통조림은 이미 뚜껑이 열려 있었고 내용물도 먹기 좋게 으깨져 있었다. 이렇게 친절하다고?

 

그때, 누군가 불쑥 머리를 내밀며 그의 생각을 끊었다.

"크로우, 나 왔어!"

진한 우유 향기가 코끝을 스쳤고, 진주 동생이 살갑게 그의 팔을 붙잡으며 옆자리에 앉았다.

"방금 무슨 나쁜 짓을 했길래 그렇게 큰 소리가 나게 맞은 거야?"

크로우는 철창에 걸린 꽃바구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진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오빠도 '식빵(面包)'이가 보고 싶은 거야?"

 

'보고 싶어 죽겠지.' 크로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한테 흰 식빵 한 줄만 주면 당장이라도 몸을 팔 텐데.'

 

침을 꿀꺽 삼키던 그는 곧 이성을 되찾고 '식빵'이 사람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느릿하게 단어를 되뇌었다.

"식——빵——?"

 

마당에 가득한 비추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오직 등을 돌린 채 마당을 쓸고 있던 백작만이 잠시 멈칫했을 뿐이었다.
 
"벌써 잊어버린 거야, 바보 크로우? 식빵이도 유모가 낳았잖아. 내 제일 친한 친구야."
크로우는 온화하게 고개를 숙여 소녀의 머리칼을 응시했다.
 
"꽃바구니도 식빵이가 만든 거야. 그 애는 정말 착했어. 베리 농장에서 가장 좋은 아이였는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뇌암으로 죽었대."
진주는 이 대목에서 스스로를 타이르듯 낮은 목소리로 경을 읊조렸다.
"노래를 많이 부르고, 헛소리는 줄여라. 노래를 많이 부르고, 헛소리는 줄여라……."
 
크로우는 무언가 직감하고 다시 철창에 걸린 작은 꽃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그늘진 그곳에서, 그의 왼쪽 눈은 소리 없이 베리 농장의 두 번째 망자를 인식했다.
 
구슬처럼 맑고 윤기 있는 소녀가 꽃바구니 속에서 걸어 나와 그의 앞에 나타났다. 키는 작고 얼굴은 동글동글해서 마치 솜사탕 같았지만, 눈매만은 백작과 똑 닮아 있었다.
 
찰나의 눈 깜빡임 사이, 크로우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보았다. 배경의 빛으로 보아 어느 깊은 밤이었을 것이다. 식빵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홀로 여성 숙소를 나와 대여섯 가닥의 짚줄을 꼬아 만든 마포 밧줄을 끌고 왔다. 서툰 솜씨로 철창에 올가미를 매단 그녀는 발판을 딛고 올라가 머리를 밀어 넣었다. 크로우의 호흡이 멎었다. 어제의 살인 사건과는 달랐다. 이번의 질식감은 온화하고 길게, 그리고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옆에 있는 어린 소녀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하도록 조용히 앉아 그 고통을 견뎌냈다.
 
이번 사망 현장에는 다른 이들도 있었다. 남성 숙소 작은 마당에 있던 두 남자, 크로우 자신을 포함한 이들이 깨어 있었다. 바보 형제 둘은 마치 나무 조각이나 진흙 인형처럼, 한 명은 마당에 앉아 있고 한 명은 창틀에 엎드린 채 멍하니 철창 끝에서 벌어지는 자살을 목격하고 있었다.
 
식빵이 그들의 시선 속에서 발판을 걷어찼다. 흔들리는 몸이 철창에 부딪히며 끼익거리는 소리를 냈다. 백작이 달려 나와 소녀의 몸을 끌어안을 때까지도, 남성 숙소의 두 인형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다만 아주 짧은 한순간, 어둠 속 어디선가 한 줄기 빛이 비쳤다. 중년 종공의 눈동자가 잠시 반짝였다가 이내 꺼졌다. 마치 광풍에 말려 올라간 불꽃 같았다. 크로우는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풍경……."
 
식빵은 뇌암으로 죽었다. 이곳에서 절망 속에 죽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뇌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