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멋진 신세계 (2)
“나의 귀여운 아가, 가여운 것. 어서 앉으렴. 앉아…… 아이고, 드디어 열이 내렸구나!”
찰스 씨는 털이 숭숭 난 앞발을 내밀어 크로우의 허리를 친근하게 감싸 안았다. 앞발의 길이가 짧아서 더 높이 닿지 않았다. 찰스 씨는 크로우를 토닥이고 문지르며, 원래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기괴한 소리를 내었다.
크로우는 위대한 찰스 씨의 능글맞은 태도에 하마터면 두드러기가 돋을 뻔했으나, 저지능 신분임을 고려해 꾹 참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식스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은 가끔 상상한 것을 사실인 양 말하곤 하기에, 그가 밖으로 나가 마을에 유명한 바보가 갑자기 청산유수로 말을 하더라고 떠들어대도 어른들은 진지하게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쥐 머리를 한 찰스 씨는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찰스 씨의 두개골 구조는 쥐에 가까웠지만, 가까이서 관찰하니 진짜 쥐보다는 조금 더 평평했다. 인간처럼 이목구비 부근에는 털이 거의 없었고, 인류와 유사한 얼굴 근육이 발달해 있어 표정이 꽤 풍부했다. 진짜 쥐의 앞발 엄지손가락은 퇴화되어 있지만, 찰스 씨의 앞발은 훨씬 인간의 손과 닮아 있었다. 비록 손가락은 네 개뿐이었으나 그중 하나는 분명 엄지손가락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으며, 할퀴거나 잡는 동작이 매우 유연하여 잘하면 손가락 하트까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찰스 씨는 뚱보 식스가 보이지 않는 듯, 두 작은 눈을 오로지 크로우에게만 고정한 채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유모에게 손짓하여 "가여운 아기에게 통조림 하나를 따주라"고 시켰다.
결과적으로 그 통조림은 스팸도 참치도 아닌, 황도 설탕물 통조림이었다. 크로우는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꾸물거리며 통조림을 건네받은 크로우는 흥미가 전혀 생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단 음식을 거부하고 있었다. 병에는 금발에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는 멍하니 그 미인을 감상하며, 이 미인은 통조림 병 위에서 먹방을 찍을 게 아니라 샴푸 광고를 찍어야 할 외모라고 생각했다.
옆에서 찰스 씨가 끊임없이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자, 크로우는 그 정성을 거절하기 어려워 억지로 입안에 황도 한 조각을 넣고는 씹는 과정을 생략한 채 그대로 삼키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멍해지고 말았다.
설탕물이 혀의 모든 미뢰를 깨워 광란의 파티를 벌이게 만들었고, 손과 입 이 배신자 놈들은 뇌가 반응하기도 전에 찰떡궁합을 선보이며 두 번째 황도 조각을 이미 삼켜버린 뒤였다.
……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러고는 남은 설탕물까지 들이켰다.
그의 영혼과 육체가 황도 통조림 한 병 때문에 이혼 서류를 접수하려 할 때, 찰스 씨는 1.5미터나 되는 거대한 발을 꼬고 옆에 앉아 크로우를 바라보았다. 마치 늙은 농부가 자신의 보리밭을 유심히 살피는 듯한 눈빛이었다.
“훨씬 낫구나. 역시 과일이라도 먹여야 두어 입 더 먹는군. 비록 저 고양이같은1 망할 지상인 놈들은 골골대는 걸 좋아한다지만, 얘도 참 키우기 쉽지 않아.” 찰스 씨가 유모에게 말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병이 나니 원. 이틀 전에도 라오한스2가 얘를 데려다 새끼 한 배 뽑아보겠다고 빌려달랬는데, 내가 도저히 허락하질 못했어. 혹시라도 구매자가 물품을 수령하러 왔을 때 하자라도 생길까 봐 겁나서 말이야. ”
찰스 씨의 말은 허공에 흩어졌다. 유모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서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찰스 씨가 발을 뻗어 유모를 툭 찼다.
“이 망할 멍청이 같으니라고, 자기가 낳은 자식도 돌볼 줄 모르는군.”
유모는 반 걸음 정도 비틀거리다 스스로 균형을 잡고 섰지만, 여전히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아무 말도, 소리도 내지 않았다.
“너란 녀석은 참 가련하면서도 얄밉구나.” 거대 회색 쥐 찰스 씨가 다시 자비로운 척 말을 이어갔다.
“너희 종족은 번식도 이미 이리 힘든데, 너는 또 어찌나 어리석은지. 수유기만 지나면 자기가 낳은 새끼도 몰라보니. 에휴! 다른 집 종모들은 안 그러는데 말이야……”
찰스 씨는 감탄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크로우를 달래듯 혀를 찼다. 크로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찰스 씨의 작은 눈에서는 기쁨의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먹으렴, 많이 먹어라, 나의 착한 아이, 나의 돈나무3야.”
크로우를 다 살펴본 찰스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모에게 몇 마디를 더 당부했다. 그러고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뚱보 식스를 앞발로 대충 가리켰다.
“얘는 이 정도로 하지. 전문가도 합격이라 했으니 합격인 걸로 치고, 조금 있다가 네가 다시 우리로 데려가거라.”
뚱보 식스의 눈이 순식간에 반짝였다. 마치 유치원에서 칭찬 스티커라도 받은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유모! 저 합격했대요!”
찰스 씨가 팔자걸음으로 방을 나서자마자, 식스는 제자리에서 3센티미터쯤 폴짝 뛰어오르더니 기뻐서 유모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하지만 유모의 차가운 시선이 닿자 슬그머니 옷자락을 붙잡으려던 작은 손을 거두고는, 발을 돌려 크로우 앞으로 달려왔다.
유모가 능숙하게 병실을 청소하는 동안, 식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크로우에게 ‘무엇을 많이 먹고 적게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괴상한 양생법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황도 통조림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키더니, 은근슬쩍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 기억엔 형, 단 거 안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 말이 객관적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크로우는 비록 식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어린아이 앞에서 혼자 음식을 독차지할 만큼 몰상식하지도 않았다. 결국 통조림의 절반 이상이 식스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꼬마 친구는 병을 통째로 안고 남은 설탕물까지 한입에 털어 넣고 나서야 유모의 손에 끌려 아쉬운 듯 방을 나섰다.
병실이 고요해지자 크로우는 빈 병을 만지작거리며 찰스 씨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그의 구매자는 이른바 ‘지상인’이라는데, 들어보니 돈은 많고 머리는 나쁜 이들 같았다. 골골대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보니 아마도 생산적인 일에는 종사하지 않는 상류 계층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상인’이란 대체 어떤 존재일까? 금붙이를 주렁주렁 매단 부자 쥐일까? 어쩌면 쥐가 아닐지도 모른다.
찰스 씨의 욕설에는 항상 ‘고양이’가 섞여 있었다. 1.5미터나 되는 거대 쥐 선생이 설마 고작 5킬로그램짜리 작은 고양이와 기싸움을 벌이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쥐 머리를 한 사람이 있듯, 그 ‘고양이’는 아마도 1.8미터쯤 되는 고양이 머리를 한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상식이라곤 전혀 없는 크로우는 지금 당장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눈앞의 한정된 단서만을 가지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뇌에 문제가 생겨 많은 기능이 결여된 덕분인지, 이렇게 앞날이 막막한 상황에서도 그는 딱히 초조해하지도, 겁을 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마주치는 모든 것을 신선하게 여겼다.
금방 그는 가축 노릇도 참 괜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나 사랑받는 가축은 KPI4도 없고 ‘996’5을 할 필요도 없었다. 온종일 먹고 자는 것 외에는 발가락이나 만지작거리면 그만이니,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유일한 옥에 티라면 식사였다. 병실에서 먹는 것은 일종의 ‘뷔페’ 형식이었는데, 병실 구석벽에 붙은 수납함에 음식이 놓여 있어 배가 고프면 알아서 꺼내 먹어야 했다.
그들의 주식은 개 사료와 비슷한 작은 과자였다. 식감은 눅눅하기 이를 데 없어서, 마치 습한 날씨에 사흘쯤 내놓아 눅어버린 듯했다. 유모의 저작근이 발달하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사육사 역시 딱히 세심하지는 않았다. 서로 다른 맛의 과자들이 하나의 플라스틱 통에 아무렇게나 섞여 담겨 있었다. 짠맛도 있고 단맛도 있어서 한 줌 집어 입에 털어 넣으면 마라 맛, 바나나 맛, 풀 향기, 소고기 맛의 네 가지 맛이 무작위로 조합되어 아주 오묘한 경험을 선사했다.
매번 개 사료 같은 과자를 씹을 때마다 크로우는 식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그 아이는 대체 이런 걸 먹고 어떻게 그렇게 살이 통통하게 올랐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입원 기간 동안 크로우는 식스를 몹시 그리워했다. 그 꼬마 친구는 마치 살아있는 자동응답기 같아서 묻는 말에는 무엇이든 척척 대답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꼬마 녀석은 다시 오지 않았고, 대신 유모와 찰스 씨는 매일 그를 찾아왔다.
‘유모’라는 단어는 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직함인 듯했고, 그녀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처음엔 ‘크로우’ 같은 호칭이 그저 별명인 줄 알았으나, 이제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파악하고 나니 이것이 바로 그들 가축들의 공식 명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모는 매일 찰스 씨를 따라 한 번씩 찾아와 청소를 담당했다. 크로우는 그녀를 열렬히 환영했지만, 차마 그녀를 엄마로 대접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그녀보다 최소한 몇 살은 더 많다고 느꼈다. 굳이 그의 팽창된 영혼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유모의 나이로 보아 그만큼 커다란 덩치의 아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가축들이 그렇게까지 일찍 새끼를 치는 건 좀 과하다 싶긴 했다.
찰스 씨가 있을 때 유모는 마치 영혼 없는 인형 같았다. 하지만 선생이 떠나고 나면 그녀는 차갑게 ‘부활’했다. 그녀는 커다란 눈에 깊은 눈구덩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가끔 크로우는 그녀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그 눈빛은 통조림의 성분표보다 훨씬 복잡했다…… 통조림을 비방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위대한 찰스 씨는 그에게 간식으로 통조림을 챙겨주곤 했는데, 대부분 과일이었고 가끔 즉석 육류나 곡물 통조림도 있었다. 그렇게 알록달록한 통조림통들이 꽤 많이 남게 되었다. 크로우는 다른 살아있는 존재 앞에서는 수다를 떨 수 없었기에, 사람이 없을 때를 틈타 통조림 위의 꾀죄죄한 모델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의 몸은 바람에 말린 마늘 껍질처럼 약해서, 하루 중 대부분을 혼수상태로 보냈고 밥 먹을 때나 겨우 잠깐 깨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효율적으로 자신에게 몇 명의 홍안지기6를 만들어주었고, 두 명과는 의형제까지 맺었다.
비록 통조림 친구들의 성분표가 선생의 키보다 길긴 했지만, 최소한 씹는 맛만큼은 ‘개 사료’보다 강했기에 크로우는 매우 감격했다. 게다가 성분표가 길면 좋은 점도 있었다. 물, 설탕, 항생제 같은 기초적인 단어 외에도, 크로우는 다양한 통조림의 맛과 색깔을 대조해 보며 수많은 식품 첨가물의 표기법을 추론해 냈다. 성분표에는 칼로리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대신 각 성분의 함량이 적혀 있었는데, 덕분에 그는 숫자 표기법과 계량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숫자가 십진법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는 그가 처음에 추측했던 팔진법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손가락이 여덟 개인 쥐 인간들은 아마도 이 세계의 지배자가 아닐 가능성이 컸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크로우 스스로가 자신이 그저 순수하고 낙천적인 바보인 줄 알았는데, 막상 머리를 써보니 알 수 없는 지식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셈이 꽤 빨랐고, 식품 산업과 관련된 화학 지식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문맹인 듯하면서도, 또 완전히 문맹은 아닌 것 같았다.
‘병원’에서 며칠간 혼미하게 지내는 동안, 크로우는 자신의 몸에 점점 씹는 맛이 생기고 있다고 느꼈다.
찰스 씨의 치아 건강이 부디 좋길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위대한 틀니까지 통째로 빠져버릴지도 모르니까.
입원하고 대략 나흘째 되는 날이었을까. 자고 일어나니 크로우는 마침내 몸이 꽤 가뿐해진 것을 느꼈고, 작은 방 안을 단숨에 세 바퀴나 돌 수 있었다.
동시에 몸이 회복됨에 따라, 어떤 익숙하면서도 묘한 감각이 그에게 되돌아왔다.
마치 골절 환자가 막 석고 붕대를 푼 것 같았다. 몸의 부품들은 분명 제 것인데, 걷는 본능은 남아 있으면서도 막상 다리를 내디디려니 어딘가 낯선 기분이었다.
그는 잠시 그 느낌을 음미하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다리’가 자신을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겨 ‘개 사료’가 놓인 수납장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 보자…… 나에게 뭘 말해주고 싶은 거지, 오랜 친구야?”
나무 수납장과 바닥 사이에는 5센티미터 정도의 틈새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크로우는 그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과일 통조림을 먹을 때 썼던 긴 자루 국자를 틈새로 밀어 넣어 휘저었고, 이윽고 시커먼 털실 뭉치 하나를 끄집어냈다. 다시 자세히 보니 그것은 머리 부분만 완성되고 몸통은 아직 형태가 잡히지 않은 털실 인형의 반제품이었다. 보기엔 좀 섬뜩한 구석이 있었다.
이게 다 뭐람? 저주 인형인가? 누굴 저주하려는 건가?
의구심이 들던 찰나, 크로우의 가슴이 갑자기 크게 요동쳤고 왼쪽 눈가가 미세하게 뜨거워지더니 왼쪽 시야가 암전되었다.
어스름한 조명 아래, 그의 왼쪽 눈동자가 천천히 육망성7모양으로 변하며 홍채 위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오른쪽 눈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지금 이곳, 텅 빈 작은 방과 기괴한 실뭉치였지만, 왼쪽 눈에 비친 시커먼 실뭉치는 조금씩 먼지를 벗어던지더니 본래의 파란색으로 변하며 검고 작은 지문 하나를 드러냈다.
그 지문 위로 반투명한 작은 손 하나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뒤이어 팔과 몸통, 머리와 목이 차례로 돋아났다…… 1초도 채 되지 않아, 대략 7~8세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크로우의 왼쪽 눈에 비친 아이는 수도관 쪽으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이는 이미 병색이 완연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였고,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온 힘을 다해야 했다. 목이 몹시 말랐던지 아이는 수도관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초점이 흐릿해진 눈으로도 고사리 같은 손을 끝까지 뻗어보았지만, 갑자기 무언가에 걸린 듯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크로우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아이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허공만을 움켜쥐었을 뿐이다.
그는 이 작은 생명이 버둥거리다 결국 마지막에 움직임을 멈추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크로우의 몸은 아이가 느꼈던 감각을 고스란히 복제해 왔고, 그의 이마에는 즉각 찬바람이 일며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원래도 창백했던 안색이 한층 더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질식할 거 같은 산소부족의 느낌을 면밀히 분석했고, 이 아이가 선천성 심장병으로 사망했음을 짐작했다.
그때, 왼쪽 눈 속의 화면이 정지하더니 이미 죽음의 나라로 떠난 아이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크로우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그 손을 맞잡았다. 이번에는 허공을 가르지 않았다. 시공간 너머, 그는 익숙한 '죽음'의 감촉을 느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교차한 손 위로 한 줄기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크로우가 고개를 살짝 돌리자 왼쪽 귓가에서 쇳소리 섞인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대한 찰스 씨에게 드릴 선물을 아직 다 못 만들었어요……."
크로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죽으면 등불이 꺼지듯 모든 게 사라지며 죽은 자와 대화할 수 없다. 그 말은 마치 아이가 세상에 남긴 메아리처럼 크로우의 귓가에 반복해서 맴돌 뿐이었다.
"알았어." 크로우는 아이의 손을 가볍게 누르며 말했다.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니까, 내가 대신 완성해서 그 양반한테 전해줄게."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등을 덮고 있던 그림자가 칠흑 같은 계약의 표식으로 변하더니 그대로 그의 손바닥 안으로 파고들었다.
크로우는 순식간에 현실 세계로 튕겨 나오듯 돌아왔다. 왼쪽 눈에 보이던 모든 환상은 사라졌고, 눈동자 역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죽은 자의 잔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크로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쥐었다 펴 보았다. 왠지 모르게 이 손으로 이와 비슷한 계약들을 수없이 맺어왔던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려 애썼으나, 여전히 아무런 실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 원문의 ‘猫日’는 중국의 흔한 욕설인 ‘狗日’의 개(狗)를 쥐의 천적인 고양이(猫)로 바꾼 언어유희. 한국으로 치면 개같은>고양이같은 으로 바꾼 것 [본문으로]
- 중국에서는 연장자나 친구 등을 존경의 의미를 담아 친근하게 부를 때 성 앞에 라오(老)를 붙인다. [본문으로]
- 흔들면 돈이 떨어지는 신화 속의 나무를 뜻한다. 중국에서는 손쉽게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할 때 흔히 쓰는 성어. [본문으로]
- 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의 약자로, 목표 달성을 위해 관리하는 성과 지표 [본문으로]
-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 [본문으로]
- 매우 친밀하고 마음이 잘 통하는 여성 친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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