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여, 검은 만다라여.”
“장미는 빛을 가렸노라 욕하고,”
“백합은 향을 더럽혔노라 우노니.”
“난쟁이 이끼는 전전긍긍하며, 돌 틈을 타고 담장을 넘네…….”
한밤중을 지나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만물이 적막에 잠긴 염소자리 주는 여전히 깊은 꿈속에 빠져 있었다.
염소자리 주 꼬리 구역(尾区) 성요성, 영주 성채 2층의 작은 서재.
암막 커튼은 걷혀 있었고,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동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재의 주인인 성요성의 영주는 지금 바닥에 볼품없이 널브러져,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 짙은 색의 수정병 하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특수 제작된 가느다란 튜브가 영주의 뒤통수에서 병 안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은 실시간으로 그의 뇌수를 뽑아내고 있었다.
영주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풀려 있었다.
잠시 후, 흰 장갑을 낀 한 쌍의 손이 흡입관을 떼어냈다. 그는 병을 들어 전등 불빛에 비추어 보더니, 스포이트로 병 속의 액체 한 방울을 찍어 입안에 넣었다. 맛을 음미하던 '흰 장갑'은 발효에 실패한 레드와인을 마신 듯 나직이 탄식했다.
이윽고 '흰 장갑'은 허리를 숙여 영주의 시신을 안아 올렸다.
영주는 체중이 삼백 근이 넘는 거구로,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뱃살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그러나 '흰 장갑'은 아무런 기색 없이 그를 안아 들더니, 가볍게 영주의 몸을 털이 보송보송한 토끼 인형 옷 속으로 밀어 넣고는 의자에 앉혔다.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부드러운 아이들의 합창이 그에게 반주를 맞춰주고 있었다.
“만다라여, 검은 만다라여.”
“정의로운 꿀벌은 침묵하고,”
“어리석은 거미는 수의를 짜네.”
“개미 떼가 소리 높여 외치나니. 태워 죽여라, 태워 죽여라, 어서 이 불길한 꽃을 태워 버려라!”
‘흰 장갑’은 영주의 머리를 받쳐 들고, 그 고귀한 머리통에 순백의 토끼 귀를 씌워주었다. 이어 바늘과 실, 자를 꺼내더니 신들린 듯한 손놀림으로 시신의 콧구멍을 꿰매고, 입술을 잘라 세 갈래로 갈라진 토끼 입 모양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은침 몇 개를 영주의 뺨에 깊숙이 찔러 넣어 토끼의 수염까지 완성했다.
자를 사용한 덕분에 수염 사이의 간격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동요 한 곡이 다 끝나갈 즈음에, 뚱뚱한 영주는 어느덧 우스꽝스럽고 귀여운 모습의 거대한 흰 토끼로 탈바꿈해 있었다.
‘흰 장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흰 토끼1가 된 영주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작은 케이크 하나를 꺼내더니,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그 위에 화려한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촛불 위로 불꽃이 일렁이는 찰나, 마치 사전에 예행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스피커에서는 동요가 끝나고 다음 곡인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왔다.
‘흰 장갑’은 두 손을 맞잡고 시신을 향해 눈을 감았다. 노래가 끝날 때쯤, 범인은 아마도 마음속의 소원을 다 빌었을 것이다. 물론 ‘세계 평화’ 따위의 아름다운 축복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이윽고 그는 촛불을 끈 뒤, 영주의 마지막 식사를 대신하듯 케이크를 깨끗이 먹어 치웠다.
“기일 축하해요, 토끼 씨…… 잘 자요.”
범인은 식기들을 챙기고 도구 상자를 들어 방을 나섰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바닥에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는 주인을 따라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진 그림자는 꿈틀거리며 흩어지더니 마치 지우개처럼 책상과 바닥을 훑으며 먼지와 핏자국, 지문, 머리카락 한 올, 그리고 케이크 부스러기까지 모든 흔적을 말끔히 지운 후 문틈 사이로 미끄러져 나가 주인을 뒤쫓았다.
현장 처리를 마친 범인은 서두르지 않고 성채 2층 서쪽 복도를 따라 유유히 사라졌다. 영주가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성채 내부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가죽 밑창이 깔린 신발을 신고 카펫 위를 걸었기에, 발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복도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흰 장갑'의 발길이 문득 멈췄다. 그는 몸을 틀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2층 모퉁이 창 너머로 수상쩍은 작은 그림자 셋이 보였다.
대장 격으로 보이는 이는 열 살 남짓한 소녀였다. 아마색 긴 머리를 굵게 땋아 내린 소녀는 성장기 특유의 길쭉한 팔다리 때문에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뒤로 비슷한 또래의 소년과 소녀가 손을 꼭 맞잡고, 땋은 머리 소녀를 따라 비틀거리며 뒤를 쫓고 있었다.
범인은 창가에 몸을 기댔다. 그림자는 마치 먹물처럼 그의 발밑에서 성채 벽면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나직한 소리로 아까의 그 동요, <검은 만다라>를 흥얼거리며 흥미롭다는 듯 한밤중에 탈출을 감행한 꼬마 친구들을 관찰했다. 그의 시선은 아이들이 성채 뒷마당을 가로질러 갈 때까지 계속 머물렀다.
“운이 좋네, 꼬마 귀염둥이들. 좋은 날을 골랐어.”
말을 마친 그가 몸을 일으켜 자리를 뜨자, 커튼처럼 성채 외벽에 걸려 있던 그림자가 순식간에 수축하며 주인의 발걸음을 따라붙었다.
그제야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성채 외벽과 정원, 통로의 감시 카메라들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며 렌즈의 방향을 정원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곧이어 황혼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밀려왔다.
황혼 무렵, 하늘이 막 어스름해지기 시작했으나 자외선의 여세는 여전했다. 청소부들은 이미 교대 근무를 위해 자리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이 성채의 밑바닥 인생들로, 가장 먼저 일어나 가장 늦게 잠들며, 가장 더러운 일을 하고 가장 적은 임금을 받았다.
두 명의 청소부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다 갑자기 그중 한 명이 발을 멈추더니 동료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 안 들려?”
“무슨 소리?”
“쉿, 들어봐.”
“이거…… 어느 방 오디오가 안 꺼진 거지?”
“작은 서재 쪽인 것 같은데.”
“영주님이 어젯밤에 서재에서 주무신 거 아냐? 소음 때문에 깨시면 큰일 나니까 그냥 가자. 2층은 청소하지 말고.”
“그럴 리가. 내가 교대할 때 확인해 봤는데, 2층은 커튼도 안 쳐져 있었어. 봐, 서재 문도 제대로 안 닫혔잖아. 야간조 녀석들이 게으름 피우느라…… 아! 죄, 죄송합니다!”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서려던 청소부는 이미 거대한 토끼로 변해버린 영주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는 순간 영주의 기괴한 개인적인 취향을 목격한 줄로만 알고, 자세히 살펴볼 겨를도 없이 겁에 질려 급히 문을 닫으려 했다.
“왜 그래?” 동료는 앞사람에게 시야가 가려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했다. 그저 쏟아지는 빛이 눈이 부신 듯 나직이 불평을 터뜨렸다. “눈부셔.”
작은 서재는 서향이라 매일 오후 햇살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었다. 지금은 비록 황혼이었으나 잔광은 여전히 강렬했다. 앞장섰던 청소부는 멍하니 서 있다가, 서재 문을 완전히 닫기 직전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기괴한 토끼 옷을 입은 영주는 커튼도 치지 않은 채, 쏟아지는 금빛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앉아 있었다. 역광을 받은 토끼의 얼굴 위로는 피칠갑이 된 미소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어린아이의 노랫소리는 고요한 복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 만다라여, 검은 만다라여——"2
'순백악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순백악마 6장 - 地下城 : 美丽新世界 멋진 신세계 5 (0) | 2026.02.25 |
|---|---|
| 순백악마 5장 - 地下城 : 美丽新世界 멋진 신세계 4 (0) | 2026.02.25 |
| 순백악마 4장 - 地下城 : 美丽新世界 멋진 신세계 3 (0) | 2026.02.25 |
| 순백악마 3장 - 地下城 : 美丽新世界 멋진 신세계 2 (0) | 2026.02.25 |
| 순백악마 2장 - 地下城 : 美丽新世界 멋진 신세계 1 (0) | 2026.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