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멋진 신세계 (13)
팀장은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살피더니,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36호에게 물었다.
“천부 등급 불변론과 그 예외에 대해서는 이미 들어본 적 있겠지?”
36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지만, 상식이나 다름없는 사실이었다.
염소자리 주, 이 풍요로운 대륙은 아름답고 강력한 혈족(血族)들을 길러냈다. 이곳에서는 낮을 백야(白夜)라 부르고 밤은 암일(暗日)이라 부른다. 또한 자정을 뜻하는 오야(午夜)는 정오 12시를 가리키며, 새벽인 청신(清晨)이 곧 황혼을 의미한다. 혈족 중에서도 극소수의 신의 총아들은 성년이 될 때 특정 천부를 각성하여 사회의 지도자가 된다.
천부는 총 4단계로 나뉘는데, 1급이 가장 낮고 4급이 가장 높다. 1급이 엘리트 계층의 중추적인 세력이라면, 2급은 각 분야의 우두머리 격이다. 2급 천부자는 영주처럼 귀족 작위를 받아 자신만의 봉토를 소유하거나, 매일같이 정치와 경제 판도를 뒤흔드는 사회적 명사가 되기도 한다.
3급에 이르면 그야말로 완전한 거물이다. 3급 천부자는 염소자리 주의 핵심 권력 집단에 진입하거나, 반대로 명예와 모든 것을 잃고 감옥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4급은 친왕으로 추대되며, 일단 세상에 나타나기만 하면 주의 보물(洲宝)이라 불린다. 4급 천부자는 설령 주에 반역하는 대죄를 저지르더라도 수많은 추종자가 따르며, 스스로 정권을 세우거나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동급의 천부자를 제외하고는, 세상에 이들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사실상 없다.
천부자의 구 할은 1급이고, 2급의 수는 1급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3급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주의 5대 구역(区)과 수천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땅을 통틀어 3급 천부자는 겨우 십여 명 남짓에 불과했다.
4급에 관해서라면, 그들은 주의 운명을 결정짓는 존재다. 혈족들은 심지어 4급의 이름을 따서 시대의 명칭을 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 친왕이 신국(神国)으로 돌아간 지 이미 20년이 지났으나 아직 새로운 4급이 나타나지 않은 지금, 매체들은 이 20년을 침묵의 시대라 부르고 있다.
잔혹한 사실은 천부자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와 마찬가지로 천부 등급 역시 유전자 복권과 같아서, 각성 시 측정된 천부 수치는 평생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능력의 응용력을 키우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지만 불변론에도 예외는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전설 속 혈족의 7대 '신성 천부'다. 그것은 진정한 기적이다. 전설 속 창세신 가인과의 관련성을 제외하더라도, 신성 천부의 가장 특별한 점은 바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녀 평생에 걸쳐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성 천부의 소유자는 각성 당시 고작 1급이거나 그보다 훨씬 미약한 수준이더라도, 탐구를 통해 한 걸음씩 올라가 결국 전설 속 신의 경지에 닿을 수 있는 억만 분의 일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염소자리 주의 가장 오래된 7대 가문은 대대로 이어지는 신성 천부의 힘을 빌려 주의 핵심 권력을 굳건히 장악해왔다.
팀장은 감시 카메라를 힐끗 보더니 손으로 입모양을 가리며 나직이 말했다.
“그 치안관의 천부 이름은 '통찰'이야, 1급이지.”
“통찰?”
어쩐지 낯익은 이름이었다. 36호는 기억 속에서 재빨리 그 단어를 검색하더니 숨을 들이켜며 외쳤다.
“오만한 사자! 노펠러 가문 말입니까?!”
역사상 첫 번째 혈족 친왕을 배출한 가문이었다!
“어? 잠깐만요……”
치안관의 성은 노펠러가 아니잖아.
팀장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둔한 36호라도 그제야 눈치를 챘다. 신성 천부를 각성하고도 가문의 성을 따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출신은 십중팔구 가문에 치욕이 될 수준일 것이다. 팀장이 왜 밖에서 함구하라고 신신당부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래도 믿기지 않네요. 신성 천부라니…… 살아있는 신성 천부자라니.”
36호는 한동안 충격을 소화하더니 나직이 물었다.
“그럼 ‘통찰’은 대체 어떤 능력인가요?”
“역사상 그 노펠러 친왕은 ‘전지(全知)’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 팀장이 말했다.
“그가 너를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네 과거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였단 거지.”
36호는 몸서리쳤다.
“잠깐만요, 그럼 우리가 뒤에서 수군대는 것도……”
“긴장할 것 없다. 1급은 그 정도로 신기하진 않으니까.” 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심지어 ‘통찰’은 공격형 천부도 아니라서 1급 중에서도 그다지 우세한 편은 아니야. 들리는 바로는 1급 통찰자는 오감이 보통 사람보다 예민해서 사물 사이의 연관성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동급의 천부를 어느 정도 눈치채는 수준이라더군. 아까 못 느꼈어? 치안관이 용의자의 이력서를 찾아냈을 때, ‘9할은 이 자와 관련이 있다’라고 했지 ‘이놈이 범인이다’라고 단정 짓지는 않았잖아. 그는 전적으로 천부에만 기대는 게 아니라 정보 수집이나 분석 추론 능력 자체가 뛰어난 사람이야.”
36호는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치안관이 범인이 영주를 살해하는 데 사용한 천부가 ‘귀영(鬼影)’이라고만 말하고 범인 자신의 천부가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귀영’은 1급이지만 범인 본인의 천부 등급은 그보다 높아서 치안관의 감각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팀장님, 그럼 그 범인은 대체 어떤 천부를 가졌을까요? 상상조차 안 되네요. 2급씩이나 되는 천부자가 구청장 선거에나 나갈 것이지, 왜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걸까요?”
“확실히 말하기 어려워. 가능성이 너무 많아. 기록된 천부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고, 주인이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모르는 용법이 튀어나오기도 하니까.”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예를 들어, 같은 7대 신성 천부인 ‘기생(寄生)’은 카멜레온처럼 자신보다 등급이 높지 않은 모든 천부를 모방할 수 있다고 하지. 아니면 머리 구역(首区)에서 나타났던 ‘촬영(摄像)’이라는 2급 천부는 3초 동안 영상을 기록하고 자신보다 능력이 높지 않은 형상을 현실에 복제해낼 수도 있어. 심지어 우리 대총통님도……”
36호는 회백색의 눈을 크게 뜨더니 팀장의 말을 가로막았다.
“총통님의 천부는 신화 속 생물을 소환하는 거잖아요! 모방과는 전혀 다른…… 아, 죄송합니다 팀장님.”
팀장은 너그럽게 손을 흔들며 개의치 않아 했다.
“전설 속에 이런 생물이 있지. '용서받지 못하는 귀신' 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
“네, 그건…… 여러 버전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지금은 온갖 잡다한 귀신들을 다 그 부류로 몰아넣지만, 사실 ‘용서받지 못하는 귀신’에 관한 가장 오래된 전설은 암흑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대가로 미쳐버린 채 타인의 천부를 빼앗는 복수의 악마— 『암흑 생물고』 제1판에 실린 묘사인데, 어때, 우리 범인과 딱 들어맞지 않아?”
36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켰다.
“하지만, 하지만 대총통님은……”
“그냥 예를 든 거야. 그 어르신이 총통 자리 놔두고 연쇄 살인마 노릇을 하러 다니신다는 소리가 아니라.” 팀장이 신입의 머리를 가볍게 툭 쳤다.
“다시 말해, 범인이 쓰는 능력이 본인의 천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지금까지 피해자 중 영주만 2급이었고 나머지는 다 1급이었으니까. 듣자 하니 각 구역에 1급 천부를 일시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특수 도구가 있다고 해. 비록 주립 박물관에 보관 중이긴 하지만…… 범인이 박물관을 털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참 골치 아픈 일이지……”
팀장은 염소자리 주의 지도를 화이트보드에 고정하고, 이 살인마의 소름 끼치는 행적을 하나하나 표시해 나갔다.
“보통 연쇄 살인 사건은 첫 번째 사건이 가장 중요하다. 그 안에서 범인의 정보와 범행 동기가 드러나기 마련이지. 하지만 우리는 아직 첫 사건이 무엇인지조차 갈피를 못 잡고 있어.”
36호가 다급히 수첩을 뒤적였다.
“치안관님이 언급했었죠, 작년 8월에……”
“뿔 구역에서 일어난 그 독살 사건?” 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분명 첫 번째가 아닐 거다. 단지 우리가 그전의 피해자들을 찾아내지 못한 것뿐이지. 범인은 식은 죽 먹듯 여유롭게 범행을 저지르고 있고, 현장 처리는 기가 막힐 정도로 깔끔하거든.”
그녀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낡은 제복은 그녀의 몸에 잘 맞지 않는 듯 들떠 있었고, 무언가 허탈한 기색이 서린 얼굴에는 겹겹의 주름이 잡혔다.
“또 하나, 보통 연쇄 살인에는 단계적인 발전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수단이 점점 격렬해지거나 범행 간격이 짧아지는 식으로 말이야. 그런데 이 범인은 너무 안정적이야. 마치 출근 도장을 찍는 것 같달까. 피해자들 사이에 사적인 원한 관계도 전혀 없고, 유일한 공통점이라곤 그저 천부자라는 것뿐이지. 심지어 천부의 종류마저 제각각이야.”
36호는 듣고 있다가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팀장님, 설마…… 팀장님도 계속 이 사건을 쫓고 계셨던 건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훤히 꿰뚫고 있겠는가. 치안관이 흘린 정보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다.
“그래, 사회 뉴스에서 긁어모은 정보들이지.” 팀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난 치안관처럼 대단한 권한은 없거든.”
“그럼 아까는 왜……”
치안관 앞에서 왜 그리 어리숙한 모습만 보이셨던 건가요?
36호는 제 생각이 너무 무례하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완곡하게 말을 돌렸다.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처럼 행동하셔서요…… 치안관님이 팀장님의 업무 능력을 의심할까 봐 걱정되지는 않으셨나요?”
“그는 내 업무 능력 따위 관심도 없을 거다. 노펠러니까.” 팀장이 부하 직원의 멍청한 질문에 헛웃음을 지으며 36호의 본명인 ‘리드(瑞德)’를 따뜻하게 불렀다. “리드, 오만한 사자에게는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는 영리한 부하’보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줘야 하는 얼간이’가 훨씬 나은 법이야. 아무도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똑똑한 이들이 자기 잘난 맛에 뽐낼 무대를 누가 만들어 주겠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때로 상사의 장단에 맞춰줄 필요가 있는 거야.”
권한이 부족한 ‘보통 사람’이 오직 신문 기사를 뒤져서 얻은 단서만으로, 그 위대한 신성 천부 소유자보다 더 깊이 사건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얼간이 노릇을 하며 성자들의 영웅적 활약을 돋보이게 하는 들러리가 되어야만 하다니.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경찰 학교를 갓 졸업한 36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입구의 전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팀장은 그보다 오십 살이나 연상이었고, 나이도 성별도 혈연관계도 전혀 달랐다. 그러나 거울 속의 두 사람은 체형의 미세한 차이를 제외하면 이목구비가 거의 똑같아 보였다. 마치 기괴한 쌍둥이처럼 말이다.
혈족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은 대개 그러했다.
비록 ‘태양 아래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는 말이 비족이 퍼뜨린 헛소문이라 할지라도, 햇빛이 혈족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맑은 날 야외에 잠시만 서 있어도 화상은 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예술과 미를 중시하는 혈족이 지상의 풍류를 포기할 리 없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이들 중 누가 구질구질하게 지하의 흙먼지나 마시고 싶겠는가? 그리하여 백야에도 안전하게 활동하기 위한 ‘베리 가죽’ 의복이 탄생하게 되었다.
베리의 양식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기에, 염소자리 주의 대다수 서민은 신선한 베리즙조차 마셔본 적 없었다. 매일 동물 피나 ‘합성 가공 혈액’으로 허기를 달래는 그들에게 살아있는 베리 가죽으로 만든 옷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물건이었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이 입는 ‘가죽옷’은 전부 인조 피부, 즉 대량 생산된 클론 피부 기관이었다.
그로 인해 염소자리 주의 거리에는 생면부지인 이들이 마치 ‘다태아’처럼 넘쳐났다. 온 도시의 경찰이 똑같이 생겼고, 택시 기사들은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입술이 똑같이 한쪽으로 비뚤어졌으며, 청소부들은 하나같이 대머리였다.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지인들은 체형이나 냄새, 동작으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으나, 생판 모르는 남들끼리는 그저 피부 가죽의 이마 위에 문신으로 새겨진 이름을 보고 구분할 뿐이었다. 오직 치안관처럼 부와 권력을 지닌 거물들만이 맞춤형 베리 가죽을 입고 남들과는 다른 아름다운 얼굴을 가질 자격이 있었다.
염소자리 주는 이토록 조화롭고 안정적인 사회였기에, 각자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래왔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옳은 일인가?
팀장이 손가락을 튕겨 36호의 주의를 환기했다.
“정신 차려라, 꼬마야. 잡담 시간은 끝났으니 상관 험담은 그만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
“네, 그…… 팀장님, 범인이 이전 피해자의 천부를 사용해 다음 타깃을 공격한다면, 이번에도 영주님의 천부를 사용하게 될까요? 참, 팀장님, 영주님의 천부가 뭐였죠?”
“‘매력’이야.”
“네?”
“‘매력’ 천부가 발동되면 타인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지. 심지어 일정 시간 동안 상대가 자신을 미치도록 연모하게 할 수도 있어. 낮은 등급의 천부 소유자나 일반인들은 그에게 악의조차 품지 못해. 치안관이 범인을 반드시 2급 이상이라고 판단한 근거이기도 하지.” 팀장이 덧붙였다. “영주는 평민 가정 출신이라, 그의 직위와 봉토는 거저 얻은 게 아니야. 꼬리 구역처럼 온갖 부류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곳에서 오직 ‘매력’ 같은 천부만이 능숙하게 각 세력 사이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지.”
36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그래서 치안관님이 우리더러 영주님의 부고를 비밀로 하라고 한 건가요?”
“특히 지하성 말이다. 지하성의 9족(族) 18개 구에는 수많은 도망범과 불법 이민자들이 뒤섞여 있지. 그곳은 안전서의 감시조차 닿지 않는 곳이야. 얼마나 많은 비밀 통로와 복잡하게 얽힌 세력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력’ 천부의 가호 없이는 그 어둠의 세력들이 순순히 협조할 리 없지.”
“영주님의 천부가 2급이라면 범인은 어느 정도까지 모방할 수 있을까요? 범인은 지금 그 천부를 지닌 채 지하성으로 숨어들었는데……”
“그게 바로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야.” 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매력’은 서서히 호감과 신뢰를 쌓아가는 방식이지 정신 지배는 아니야. 효과를 보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비족들은 우리 혈족의 천부에 대해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숨을 헐떡이는 중사팀 형사 한 명이 불쑥 안으로 들이닥쳤다.
“팀장님!”
이마에 ‘중사팀 14호’라고 새겨진 형사가 외쳤다.
“영주, 영주님의 성에서 청소부 한 명이 자살했습니다!”
36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14호 형사가 보고했다.
“상관들께서는 범인이 영주님이 좋아할 만한 타입일 거라 추측하셨는데, 이 청소부는 그저 퇴직을 앞둔 늙은 남성이었습니다. 조사를 맡은 동료가 잠시 방심한 사이 성 밖으로 빠져나갔어서……”
팀장은 무언가 떠오른 듯 안색이 급변했다.
“내가 알기로 성의 청소부들은 황혼 전에 출근했을 텐데, 맞나?”
“네, 그 늙은 하인은 나이가 많아 담당 구역이 성의 외곽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훨씬 일찍 업무를……”
“큰일이다!” 팀장이 몸을 돌려 서둘러 나가며 말했다.
“그 청소부가 막 범행을 마친 범인과 접촉했던 걸지도 몰라.”
14호 형사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그는 아주 중요한 증인일 가능성이……”
“중요한 증인 같은 소리 하네!” 팀장이 꾸짖듯 소리쳤다.
“영주의 ‘매력’ 천부를 탈취한 범인과 접촉했을 거란 말이다! 늙고 병약한 일반인이 한밤중 판단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범인이 무슨 말을 하든 안 믿었겠어? 당장 그 청소부의 통신 기록을 샅샅이 조사하고, 치안관님께 보고해!”
36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뒤따르며 물었다.
“저기…… 범인이 청소부에게 무슨 말을 했다는 거예요?”
“'노펠러 가문은 확고한 강경파다. 평상시에도 꼬리 구역을 철저히 정돈하고 모든 외부 종족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서 가문의 신성 천부자를 파견해 비밀리에 영주를 살해하고 부고 소식을 숨긴 뒤, 지하성을 상대로 손을 쓰려 한다.' ——어때?” 팀장이 차갑게 덧붙였다. “영주의 성에서 평생을 일한 청소부는 이미 ‘매력’에 푹 절여진 상태였을 거야. 자신이 깊이 존경하던 영주가 ‘죽음에 이르게 된 진짜 진상’이란 걸 듣게 된다면……”
지하성. 방금 차를 돌린 크로우는 무심코 먼 곳을 힐끗 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허공에 매달린 궤도 스크린이 몇 번 깜빡이더니, 평화롭던 화면이 돌연 바뀐 것이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하나도 없는…… 한 ‘남성’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 모습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피부에는 죽은 사람의 푸른빛이 비치고 있었고, 입을 열어 말할 때마다 두 개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일 듯 말 듯 드러났다. 그는 분노와 절망에 가득 차 무언가를 고발하고 있었다.
동시에 지하성 상공에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러분, 제 친구가 지상으로부터 영상 통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 안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담겨 있더군요. 성요성은 도둑을 맞은 게 아니라, 영주님이 암살당했다는 소식입니다!”
크로우는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핸들 위로 몸이 쏠렸다.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순간, 그는 문득 고개를 돌려 가브리엘을 바라보았다. 순백의 ‘천사’는 여전히 평온하면서도 자애로운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화물차 때문에 일어난 바람에 낡은 담요 끝이 살짝 들렸고, 크로우는 그가 맨발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담요 아래로 드러난 설백색의 장포는 티끌 하나 묻지 않아, 마치 방금 막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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