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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악마

순백악마 13장 - 地下城 : 美丽新世界 멋진 신세계 12

제13장 멋진 신세계 (12)


크로우가 ‘뿔 구역’이 무엇인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경과 선생이 동경 어린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넌 수도권 구역에서 온 거야? 나랑…… 내 형사 주인님들도 가본 적 없는 곳인데. 거기서 여기까지 얼마나 멀어? 수만 킬로미터는 되려나?”
 
‘쯧.’
 
수도는 ‘뿔(角)’이라 부르고, 여긴 ‘꼬리(尾)’라고 부른다니. 이름만 들어도 이곳은 변방 중의 변방,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촌구석이라는 게 딱 느껴졌다. 그러니 그는 낙후된 지역의 빈민굴에서 하층 외부 이민자가 기르는 가축 신세인 셈이다. 세상에, 이건 먹이사슬의 꼬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먹이사슬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배설물쯤 되겠지!
 
신맹룡이 다시 가브리엘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 돼지 손에 떨어지게 된 거야?”
 
가브리엘이 미니멀리즘 스타일로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다.
“차에서 도둑맞았어. 아마 문 잠그는 걸 깜빡했나 봐.”
 
“놈들이 널 수도에서 여기까지 훔쳐 왔다고?!”
 
“응.”
 
크로우는 어이없다는 듯 가브리엘을 쳐다보았다. 주어조차 생략하다니, 이 거짓말은 해도 해도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냐?
 
하지만 정의로운 경과 선생은 분노에 찬 목소리를 냈다.
“그 말은 즉, 이 밀수꾼들의 더러운 발굽이 이미 수도구까지 뻗쳤다는 거군! 이건 광역 범죄 조직이야. 내가 찾아낸 이 거점도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어!”
 
“……”
크로우는 철창을 따라 아래로 스르르 주저앉았다. 위장뿐만 아니라 뇌까지 욱신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정말 내가 살펴보지 않아도 되겠니? 내가 돌봐준 작은…….”
동정심 많은 천사는 미심쩍게 잠시 말을 멈칫하더니 덧붙였다.
“베리들이 많거든. 일반적인 상처나 질병은 조금 알아.”
 
“고맙지만, 내 병은 못 고쳐.”
 
“무슨 병인데?”
 
“지병이야.”
크로우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다시 진지한 얼굴로 신맹룡에게 말했다.
“형님, 네가 경찰이라 정말 다행이다.”
만약 장사를 했다면 밑천은커녕 간신히 붙어있는 장기까지 다 털렸을 텐데 말이다.
 
저 말을 믿다니! 만약 정말로 한 줌밖에 안 되는 돼지 인간들이 목숨 걸고 수도에서 ‘고급 베리’를 훔쳤다면, 막대한 운송 비용을 들여 굳이 낙후된 지역까지 끌고 와 빈민굴에 생산 수단으로 팔아넘기겠는가…… 이걸 ‘밀수’라고 부른다고? 이건 명백한 ‘낙후 지역 지원 사업’이지!
 
신맹룡은 자신을 칭찬하는 줄 알고 수줍게 대답했다.
“아니야, 난 그저 안전서의 통조림을 받아먹는 몸으로서 내 할 일을 하는 것뿐이야.”
 
크로우는 차마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었다.
“아까 네가 돼지족 소굴을 찾았다고 했지? 거기서 안전서에 위치도 보냈다며. 그 말은, 너는 그때 이미 임무를 완수한 거나 다름없고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었다는 뜻이잖아. 그런데 왜 안 도망친 거야?”
 
신맹룡은 잠시 멍해졌다.
 
“저 아이들이 걱정돼서 차마 혼자 도망치지 못하고 지원군을 기다렸던 거 아니야? 그런데 지원군은 커녕 너희들만 먼저 화물차에 실려 여기까지 온 거고.”
 
사실 상황이 정말 그렇게 돌아가긴 했지만, 경과 선생은 다른 베리들에게 부담을 줄까 봐 줄곧 자기 희생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갑자기 크로우에게 정곡을 찔리자 신맹룡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중얼거렸다.
“사실 꼭 그렇지도 않아, 탈출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그리고 지원군을 기다리는 게 더 안전할 것 같기도 했고……. 에이, 어쨌든 우린 이런 일 하라고 있는 거잖아. 안전서의 형사 어른들이 시민을 보호하듯, 우리는 시민들의 베리를 보호해야지. 베리들을 무사히 지상으로 돌려보내는 게 내 본분이니까!”
 
충성과 신념을 지닌…… 음, 한 마리의 베리로군. 하지만 ‘베리’의 충성이란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가브리엘의 약간 비인간적인 느낌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파동도 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크로우의 위장병 쪽에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세 아이는 저마다 꿍꿍이를 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세 꼬맹이의 신발은 모두 새것이었다. 신발 밑창은 마모된 흔적도 거의 없는데 신발 겉면에는 오물이 잔뜩 묻어 있었고, 흰 옷소매에는 이끼까지 묻어 있었다. 온몸이 엉망진창인 건 도망친 흔적이라지만, 자스민이 지어낸 이야기와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 미래의 테너는 입을 열자마자 말실수를 했었다. “몸에 있던 걸 다 뺏겼다”고. 한밤중에 도둑맞은 애완용 베리가 몸에 무슨 물건을 지니고 있겠어? 공갈젖꼭지?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크로우는 이 꼬마들이 ‘납치’된 게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계획해서 도망친 ‘가출’이라는 걸 눈치챘다.
 
경과 선생은 어떻게든 아이들을 지상으로 돌려보낼 생각뿐이지만, 저 애들은 틈만 나면 경과 선생을 걷어차 저승으로 보내버릴 궁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신호만 찾으면 된다는 거지?”
크로우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몸에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게 있을 거 아니야. 경찰 이름으로 ‘하하 쥐 머리 인간들’을 찾아가서 지상이랑 연결해달라고 하면 되잖아?”
 
“안 돼, 넌 너무 순진해.”
신맹룡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하성은 원래 무법지대라 안전서의 체면을 꼭 세워준다는 보장이 없거든. 게다가 합법적인 이민자라고 해도 저 범죄자 놈들이랑 다 연결되어 있단 말이야. 하포크라테스인들은 밀수꾼들이 자기네 광장에서 대놓고 물건을 팔게 냅두는 놈들인데, 이 귀한 베리들을 도저히 그들에게 맡길 수는 없어.”
 
말을 마친 그는 안타까운 눈으로 크로우를 바라봤다.
“정말 미안해, 네 주인에 대해 이렇게 말해서.”
 
“괜찮아, 이해해.”
크로우는 예상했다는 듯 너그럽게 쥐 인간들 대신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러고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신맹룡을 데리고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저기 빌딩 틈새를 봐, 공중에 떠 있는 궤도 보이지?”
 
“응?”
 
“궤도 위에 화면이 있잖아. 지금 다큐멘터리 틀어주고 있는데, 가끔 지상 뉴스도 중계해주거든.”
크로우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중계가 된다는 건 신호가 잡힌다는 뜻 아니겠어?”
 
신맹룡의 눈이 반짝였다.
 
크로우가 덧붙였다.
“우리가 있는 곳 보라고. 분명 풍수…… 아니, 지질 조건은 비슷해 보여도 궤도차 근처 건물이 훨씬 빽빽하잖아. 쥐 인간들도 저기에 훨씬 많고. 왜겠어? 저쪽 신호가 더 잘 터지니까 그런 거 아니겠냐고!”
 
신맹룡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진심 어린 반응이었다.
“맞아,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지!”
 
“저 방향이 맞긴 한데 얼마나 멀리 가야 할지 모르겠네. 우린 어쩌면 쥐 인간 마을 깊숙이 들어가야 할 텐데, 너는 또 우릴 못 믿고…….”
 
크로우는 고뇌하는 척 연기하다 신맹룡이 부끄럽고 미안해서 당장이라도 절을 올릴 기세가 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기다려 봐.”
 
말을 마친 크로우는 머리에 쓰고 있던 베갯잇을 벗어 능숙하게 보따리를 접더니, 화물차에 있던 공구함을 끌어와 스패너, 망치…… 그리고 신맹룡은 봐도 모를 온갖 공구들을 가득 담아 신맹룡에게 건네주었다.
“가져가서 호신용으로 써.”
 
신맹룡은 조심스럽게 보따리를 받아 들더니, 마음이 더 괴로워져 자기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쪽은 안심해, 이 쓰레기 처리장은 평소에 사람 발길도 닿지 않는 곳이니까. 만약에 누가 온다 해도 애들은 차 안에 숨겨두면 그만이고. 게다가 여긴 워낙 냄새가 심해서 개코도 여기선 소용없어. 네가 운이 좋으면 고작 몇 백 미터만 가도 신호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신맹룡은 눈시울을 붉히며 울컥했다.
“그래, 사실 나 어릴 때부터 운 하나는 기가 막혔거든! 안전서에서도 다들 나보고 행운아라고 불러.”
 
크로우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운 나쁜 대형 리트리버의 동료들이, 사실은 비꼬는 투로 녀석을 ‘행운아’라 부르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 행운아 경과 선생은 자스민 일행에게 이것저것 잔소리를 늘어놓더니, 떠나기 직전 무슨 마음에서인지 주저하며 두 손을 모아 가브리엘에게 기도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했나 싶었는지, 가브리엘이 기도를 다 듣기도 전에 부끄러워하며 얼른 도망치듯 달려가 버렸다. ……보따리 밑에 신호 차단기 하나가 담겨있단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됐다.”
크로우는 손 차양을 만들고 멀어지는 신맹룡을 배웅하더니, 고개를 돌려 남은 일행에게 말했다.
“방해되는 짭새 나리는 이제 치워버렸으니, 이제 각자 볼일 보러 가.”
 
방금 막 일어난 오월이와 딸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자스민은 크로우의 허풍에 속지 않겠다는 듯 한쪽 손을 슬그머니 등 뒤로 숨기며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크로우는 대꾸할 기력도 없다는 듯 공구함에서 구급 상자를 꺼냈다.
“거의 대부분은 유통기한이 지났네, 쯧. 여기저기 떠돌며 밥 빌어먹는 불법 체류자들 신세가 다 그렇지 뭐…… 하얀 병은 지사제고, 이 알약은 항생제.”
그는 무심하게 약통들을 집어 자스민에게 던져주었다.
“복용량은 상자에 적혀 있어. 너도 읽을 줄 알겠지.”
 
오월이와 딸기는 자기네 대장을 경악하며 쳐다봤다. 보통 애완용 베리는 글을 배우지 않는 법이니까.
 
크로우는 뭔가 생각났는지 덧붙였다.
“아, 저기 적힌 건 돼지 형님들 기준이니까, 너희는 팔분의 일 정도만 쓰면 돼. 차에 있는 에너지 음료도 절반 나눠줄게. 소독용 알코올이랑 붕대, 소금도 필요해? 됐다, 그냥 다 여기 둘 테니 알아서 챙겨 가.”
 
오월이는 무언가 변명하려 했지만, 자스민에게 가로막혔다. 이 열세네 살 정도의 소녀는 나이에 맞지 않는 냉정함으로 크로우를 살피며 물었다.
“우리를 신고하지 않을 셈이야?”
 
크로우가 코웃음을 쳤다.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자스민은 아무 말 없이 곁눈질로 가브리엘을 쳐다봤다.
 
“걱정 마.”
크로우는 가짜 돼지 코를 가볍게 흔들며 가브리엘에게 경의를 표하듯 말했다.
“이 대천사 형아(哥哥)는 엮여 있는 판 자체가 너희랑은 차원이 다르니까.”
 
“나?”
가브리엘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뭘 했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크로우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순간, 크로우의 뇌리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어둡고 비좁은 통로 끝, 수십 자루의 기관총이 겨누고 있던 독방 하나.
 
그 안에는 누더기를 걸친 채 온몸이 피칠갑이 된 사람이 문 쪽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기괴하고 공허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크로우가 그 앞을 지나며 호기심에 한 번 들여다보았다가, 무심코 그 '피투성이'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 사람이 갑자기 튀어 오르듯 일어나 창살을 붙잡고 크로우의 눈을 뚫어지듯 응시하였다. 경보음과 장전 소리가 한 데 엉켜 울렸다.
 
“가자.”
옆에 있던 사람이 그를 끌어당겼다.
 
“저 사람은 누구야? 저 남자 ……아니면 그녀는 왜 저래?” 크로우가 물었다.
“우리 둘 중 누가 저 사람을 자극한 거야?”
 
“저건 ‘용서받지 못하는 귀신(无赦鬼)’이야.”
곁에 있던 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을 찾지 못하는 가련한 사람이지. 너의 눈을 거울 삼아 자신을 비춰보려는 거야.”
 
'피투성이' 사람은 몰골이 처참했고 나이도 꽤 들어 보였다. 정신병원에 이십 년은 갇혀 지낸 늙은 광인 같은 모습이라, 눈앞의 눈처럼 흰 ‘천사’와는 도저히 같은 종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크로우는 까닭 없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운전석에서 작은 거울 조각 하나를 찾아냈다. 충돌로 부서진 백미러 파편이 차 안으로 튀어 들어온 것이었다. 그는 묻어있던 먼지를 후 불고 나서 가브리엘에게 건넸다.
“공물을 바칩니다.”
 
말을 마치고는 가브리엘의 표정도 보지 않은 채,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을 억누르며 돼지의 음료 한 병을 땄다. 달콤한 음료를 머금고 화물차에 뛰어오른 그는 차창 밖으로 손을 대충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모두가 인연이 닿아 마주치게 되었으니, 크로우는 당연히 약간의 도움을 줄 의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꼭 필요한 물자를 나누어준다거나, 그 눈치 없는 대형 리트리버를 쫓아내 보내는 일 말이다. 그래야 그 순진한 놈이 자기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른 채 개죽임을 당하는 꼴을 면할 수 있을 테니까.
 
나머지는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는 산 사람들의 일에 끼어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차의 ‘화물’을 내렸으니, 이제 자신에게 온 의뢰를 마무리할 차례였다.
 
길을 따라 차를 몰며 크로우는 멧돼지의 차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경쾌하고 활기찬 차내 음악으로 노래를 바꾼 그는 능숙하게 차를 돌리며, 이번 뜻밖의 ‘사교’도 나름 수확이 꽤 짭짤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그는 적지 않은 지리 지식을 얻었다. 이곳은 ‘염소자리 주’라고 불리는데, ‘주(洲)’는 통일된 주권을 가진 단위로 국가와 유사했다. 하지만 ‘주’라는 글자를 사용하는 데다, 신맹룡의 말에 따르면 ‘뿔 구역과 꼬리 구역 사이의 거리가 수만 킬로미터에 달할 수 있다’고 하니, 이곳의 ‘주’는 아마도 그의 뇌 속의 "국가"보다 훨씬 클 것이다.
 
‘구역(区)’은 ‘주’ 아래의 단위로, 염소자리 주에는 ‘뿔 구역’과 ‘꼬리 구역’이 존재했다. 아마도 ‘족발 구역’이나 ‘양갈비 구역’ 같은 이름도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빈부 격차가 상당해 보였고, 아마도 행정과 법 집행이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분리된 구조일 확률이 높았다.
 
그다음 단위는 ‘성(城)’이었는데, 이건 이해하기 쉬웠다. 하지만 ‘성 안에 산다는 영주’라는 존재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지하성의 규모와 계층 구조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성요성’은 결코 한 명의 봉건 지주의 작은 영지가 아니었다. 이곳의 ‘영주’가 이름만 번지르르하고 실권은 없는 상징 같은 존재가 아니라면, 분명 정부를 장악한 실권자일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흡혈귀 사회처럼 ‘상위 계층’과 ‘보통 사람’ 사이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거나.
 
생각에 잠겨있던 크로우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제 평생 ‘천부자’라곤 영주님 딱 한 분만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우리랑은 다른 세상 사람 같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세상에, ‘천부자 연쇄 살인마’를 조사해야 한다니.”
성요성 안전총국의 형사 36호가 팀장 뒤를 따르며 나직하게 투덜거렸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네요.”
 
팀장은 이미 중사팀을 지도한지 삼십 년이나 된, 공로가 혁혁한 베테랑 형사였다. 그녀는 자신에게는 엄격했으나 타인에게는 관대했고, 대부분 자애로운 큰 어른 같은 모습이라 36호 같은 웬만한 신참들도 그녀 앞에서는 좀 더 활발하게 굴 수 있었다.
 
팀장은 방금 지하성과의 교섭을 마친 참이었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영주님 한 분 뿐이라니? 너 방금 치안관도 봤잖아?”
 
36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반응했다.
“뭐라고요? 치안관님도 설마……”
 
팀장은 손을 휘저으며 당부했다.
“너만 알고 있어라. 괜히 나가서 떠들지 말고.”
 
“네? 어째서요? 천부자잖아요. 십만 분의 일 확률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