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멋진 신세계 (19)
“이 털 빠진 짐승 놈들도 생업이 있으니, 뒤를 생각하지 않을 리 없지. 사람을 시켜 쥐 우두머리에게 연락해 안전서 명의의 공식 공문을 보내라. 이건 안전서의 공무라고 말이야.”
치안관은 밥통 부하들이 못 알아들을까 봐 친히 설명까지 덧붙였다.
“쥐 인간들은 안전서에 대놓고 대항하지는 못할 테고, 그렇다고 지하성을 배신하지도 못할 거다. 결국 지들도 여기서 먹고살아야 하니까. 우리 목적은 쥐새끼들이 순순히 협조하게 하는 게 아니라, 놈들을 진퇴양난에 빠뜨려서 꼬리 딱 말고 방해나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다. 알겠나?”
팀장은 태도를 바로잡고 가르침을 수용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두 종족의 생업을 강조하며 소개한 보람이 있었다. 치안관은 성격은 고약해도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갔다.
팀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네, 그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지상 무장 병력을 소집해 지하성 출입구를 돌파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치안관이 장난감 총 형태의 천부물을 또 하나 꺼내 머리 위로 몇 발 쏘아 올렸다. 오색찬란한 탄환 구슬들이 공중에서 소리 없이 터지더니, 미세한 가루가 되어 치안관과 그의 ‘짐덩어리들’ 몸 위에 골고루 내려앉았다.
치안관은 잠시 상태를 살피더니 모자란 듯싶었는지, 소독약이라도 뿌려대는 양 사방에 한 바퀴 더 쏘아댔다. 팀장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저 물건이 안전서가 아껴둔 몇 안 되는 비장의 천부물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봤다. 저 구슬은 한 사람의 ‘외부인 특징’을 지워 각종 감시 및 방어 시스템을 흔적 없이 통과할 수 있게 해준다——즉, 잠입용이었다.
치안관은 다 쓴 빈 천부물 '잠복'을 그녀의 손에 휙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따라와.”
쥐와 쥐덫의 악연은 역사가 깊다. 마치 덫에 걸리는 것이 쥐 인간의 숙명이라는 듯 말이다. 대부의 전화와 안전서의 공식 공문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두 장의 거대한 압착판이 떨어진 듯, 쥐 인간들은 난처한 쥐포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평소에 주류 사회에 받아들여져 지하성을 떠나기를 기대하며 필사적으로 윗선에 아부해 왔다. 그러나 그들의 뿌리는 하수구에 깊이 박혀 있어 밀수업자의 공급과 폭력배들의 보호를 떠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두 세력 모두의 눈 밖에 날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집결시킨 무장 병력을 제자리에 대기시킬 수밖에 없었다.
쥐들의 도시 전체가 초라한 살기로 가득했다.
자스민은 미간을 찌푸린 채 여전히 이 상황이 버겁다고 느꼈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하포크라테스인은 처음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키 1.5미터에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에 달하는 거대한 쥐 인간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압박감이 충분했는데, 그런 놈들이 군단을 이루어 진을 치고 있으니 호흡곤란이 올 지경이었다.
무장한 쥐들의 숫자는 이미 그녀의 계산 능력을 벗어났다. 자스민은 닭살이 돋았다. 쥐들은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고, 어떤 혼란이나 충돌도 없었다. 쥐와 쥐 사이의 거리는 거의 고정된 듯 일정했으며, 심지어 꼬리를 흔드는 방향조차 통일되어 있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크로우에게 물었다.
“저기, 이름조차 모른다는 그 의뢰인이랑 너, 대체 무슨 관계야?”
크로우는 눈동자도 깜빡이지 않고 쥐 인간 대군을 관찰하며 답했다.
“아무 관계도 아니야. 이름도 모르는데 친해봤자 얼마나 친하겠어…….”
자스민이 말했다. “아, 그럼 너희 교배한 거구나. ”
크로우는 숨을 잘못 들이 마셔 폐가 튀어나올 정도로 기침을 해댔다.자스민은 자신이 무슨 대단한 말을 했다고 생각지 않는 듯했다.
“뭐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
“……보통은 말이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묘사할 때는 그 단어를 쓰지 않아. 특히 성별이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아이는 더 의아해졌다.
“왜?”
교배는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할 정도로 더러운 말인가?
어린 새끼나 중성화된 개체를 제외하면, 성별이 다르면 평소에 같이 있지도 않잖아.
크로우는 그녀가 자라온 환경을 떠올리고는 잠시 침묵했다. 자스민이 자라온 육성 센터 안에서 사람은 짐승이었고, 자물쇠와 새장이 보였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사회화와 미풍양속이었으니, 그건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자물쇠와 창살이었다.
“말하자면 길어. 나도 이유는 몰라, 나한테 어느 쪽이 더 그럴 듯 한지 묻지 마——하지만 이건 인간들이 스스로 발명한 관습이야. ‘베리’처럼 외부에서 온 말이랑은 다르지. 그것과 비교하면 난 차라리 이쪽이 낫겠어…… 흠, 쥐 인간들 제법인걸.”
“무언가 알아냈어?” 자스민이 물었다. “너 대체 능력이 뭐야?”
보기엔 별로 맷집이 좋아 보이진 않지만, 꽤 실용적인 모양이었다.
“시력.”
“하?”
“상상해 봐.” 크로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쓸만한 수업용 도구을 찾았다.
“만약 네가 딸기 50명과 오월이 50명을 이끌고 있다고 해보자……”
“어디로?” 자스민이 몸을 떨었다. “지옥으로?”
“……가서 다른 딸기 100명과 오월이 100명을 상대로 싸운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자스민은 상상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 출발 10분 만에 분명 누군가는 울고 있을 테고, 30분이면 절반을 잃어버릴 것이다. 딸기들은 정전기가 일어난 종이 조각들처럼 걷다가 하나둘씩 서로에게 달라붙어 그녀의 몸에 온통 붙어버릴 테고, 오월이들은 2분마다 한 번씩 기권하겠다며 북을 쳐댈 것이 뻔했다.
“역시 지옥으로 가는 게 낫겠어.”
자스민이 멍한 표정의 오월이와 딸기를 힐끗 보았다.
“이 둘을 데리고 가는 게 내 한계야.”
“그럼 지금부터 단련을 시작해야겠네, 불씨 각하. 우리 인류 최대의 특기 중 하나는 바로 수천수만 명의 모르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거니까.”
자스민은 처음엔 그가 또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며 콧방귀를 뀌었지만, 크로우가 웃고 있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진심이야?” 그녀가 멍하니 묻더니 다시 고개를 저었다.
“딸기랑 오월이가 이 비족들처럼 될 순 없어.”
“맞아, 그건 조직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해. 돈과 시간도 많이 들지. 이 쥐들은 돈도 없고 훈련할 장소도 없어…… 게다가 이것들은 분대장이나 소대장 같은 작은 단위 조직조차 없어.” 크로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대부분 우리가 감지해 낼 수 없는 것이야. 그러니 어쩔 수 없네……”
쥐 한 마리 붙잡고 물어보는 수밖에.
“난 정말 이거 하기 싫은데.”
자스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뭐를?”
크로우는 대답하지 않고 설탕물 크게 한 입 삼키며 모든 정신력을 왼쪽 눈에 집중했다.
순식간에, 시력이 닿는 범위 내에서 수천수만 개의 사망 정보가 그의 왼쪽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쥐 인간들의 내분 중에 동족에게 찔려 죽은 것, 표범인지 살쾡이인지 모를 짐승의 앞발에 배가 갈려 죽은 것, 혈족 도주범에게 물려 죽은 것…… 더 오래된 것들은 흔적이 이미 시간에 오염되어 유용한 정보를 분별할 수 없었고, 오직 모호한 고통만이 남았다.
온몸의 마디마디가 찢어지는 듯했다. 이건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크로우의 신체는 즉시 자기보호를 가동하며 모든 감각을 상실했다. 마침내, 그는 핏자국 하나를 찾아냈다——
그 핏자국은 무장한 쥐 한 마리의 것이었다. 다른 비족들과의 대규모 전투에서 죽은 것이었다. 크로우는 왼쪽 눈의 초점을 그 사체에 고정했다. 죽은 쥐가 임종 직전 기괴한 심류(心流) 상태에 진입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음엔 아무런 잡념이 없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며, 오직 두려움 없이 맹목적으로 어떤 지휘에 따르는 상태였다.
그것을 지휘하는 것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화면이나 냄새도 아니었다……
무장한 쥐는 단숨에 목이 물어뜯겨 끊어졌고, 크로우의 목도 따라서 부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꺾였다. 그의 시선은 쥐 인간들의 번성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정중앙. 번식의 신의 거대한 몸이 한 층의 수증기에 감싸여 있었다. 어두운 지하성 안은 안개가 자욱했고, 꼬리가 긴 무수한 쥐 인간 신민들을 소환하며 꼭두각시처럼 그 발치에 엎드리게 하니, 그야말로 되살아난 사악한 신 같았다.
주변은 빛이 부족했고, 크로우의 홍채는 또 검은색이라 그의 동공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자스민이 보기에는 그가 그저 지형을 관찰하는 것처럼 사방을 몇 번 훑어보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크로우가 화물차에 기대어 미끄러져 쓰러져 내려갔다.
“이봐!”
머리카락 한 올 같은 그림자가 화물차 위로 재빨리 기어 올라오더니, 단번에 그를 낚아올렸다. 가브리엘은 펠트 토끼를 옆에 내려놓고는 즐거운 기색으로 손을 뻗어 그림자 속에서 그를 받아 들었다.
그는 마치 천사가 임종을 앞둔 어린 양을 안아 올리듯, 연민과 애정 어린 동정을 담아 크로우의 이마 위에 입을 맞추고는 익숙한 듯 추도사를 읊기 시작했다.
“내가 너의 영혼을 위로하고 너의 고통을 짊어질 수 있기를. 내가 꽃의 꿀로 너의 몸을 씻어 네가 내 품 안에서 평안히 잠들고, 너를 신의 나라로 데려갈 수 있기를…….”
궁극기를 쓴 후유증으로 크로우의 몸 곳곳의 근육이 격렬하게 경련했고, 그는 어렵사리 손을 들어 올려 ‘천사’의 머리를 밀어냈다.
“고…… 고마운데, 난 아직 돌아갈 생각은 없어…… 윽…….”
가브리엘은 아쉽다는 표정이었으나 의외로 순순히 손을 놓아주었다. 그는 ‘어린 양’을 땅바닥에 툭 던져버리고는 말했다.
“그럼 좋아——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가련한 아이야.”
크로우는 둥글게 말린 다리를 억지로 펴며, 이를 악물고 빌었다.
“천사님, 당신의 신기한 그림자로 광장 위의 저 배불뚝이 조각상을 폭파해 주소서.”
가브리엘은 그의 시선을 따라 한 번 보더니 말했다.
“안 돼.”
크로우는 속눈썹에 맺힌 식은땀을 깜빡여 털어냈다.
“내가 충분히 독실하지 않아서?”
가브리엘은 웃으며 그의 왼쪽 눈에서 흘러나온 한 방울의 핏물을 닦아 내어 입안에 넣었다.
“내가 다 써버렸거든.”
팀장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치안관이 왜 이토록 자신만만한지 말이다. 평소라면 그녀도 기꺼이 상사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우겨도 비위를 맞추며 "정말 좋은 말입니다" 하겠지만, 지금은 생사가 걸린 문제라 아첨을 떨다가는 정말 죽을 판이었다.
“치안관님, 저희는 범인이 어떤 부류의 천부권자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가 훔친 천부 능력을 다 썼다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만일…….”
치안관은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네가 천부자인가?”
“……아닙니다.”
“천부자를 몇 명이나 봤지? 천부물은 몇 개나 봤고? 벤트루 가문 사람은 몇 명이나 알고 있나?”
치안관은 체구가 건장하고 컸기에, 고압적으로 팀장을 한 번 훑어보았는데 마치 둔한 늙은 개를 보는 듯했다.
“네가 감히 내 판단을 의심하는 거냐? ‘통찰’의 판단을?”
팀장은 두피가 저릿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겁이 날 뿐입니다. 저희 같은 보통 사람은 미지의 천부에 직면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으니…… 더 많은 지원이 있다면…….”
“그 놈은 천부자를 사냥하는 천부자다.” 치안관이 차갑게 말했다.
“안전서의 그 일반인들이 무슨 소용이 있다고?”
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천부가 무슨 네 손자가 게임 하다가 뽑은 스킬 카드인 줄 아나? 모든 천부는 소유자의 신체를 변화시킨다. 서로 다른 천부는 충돌하기 마련이고. ‘동화(同化)’와 ‘기생(寄生)’이 왜 7대 신성 천부 중에서 꼴찌를 다투겠나? 그 두 미친 가문 중에 2급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놈이 얼마 없기 때문이지. 만약 범인이 모종의 천부 모방자라면, 능력을 이렇게 자주 사용했으니 이미 자기 머리 가죽을 스스로 찢어발겼을 거다.”
“천부물은……”
“천부를 보관하는 최적의 재료는 베리의 두개골이다. 벤트루 가문의 그 3급 대사(大师)가 만든 최고의 작품은 수호형 천부물인데, 각 구역 의회 대청에 보관되어 있고 에너지 단위가 107에 달하지——이게 무슨 개념인지나 알아?”
팀장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한 번에 방출해내는 에너지가 100단위에 달하는 천부자가 바로 2급입니다…….”
“다시 말해, 너 같은 폐물은 설령 ‘주의 보물(洲宝)’ 한 점을 소모한다 해도 겨우 1급보다 조금 강한 효과밖에 낼 수 없다는 거야. 너희 같은 일반인 한 마리를 죽이려면 에너지를 7,80퍼센트 정도 소모해야 할 거다. 이런 물건들은 매 점마다 번호가 붙어 있고, 암시장 경매 시작가만 최소 500만이야. 설령 범인이 정말 부유해서 나라와 맞먹을 정도라 몇 천만을 노잣돈으로 쓴다 해도, 천부물의 용량은 한계가 있어. 사람 한 명을 죽일 때 단 한 번만 쓸 수 있지——그가 죽은 사람을 부활시켜서 다시 죽이기를 반복해 영구기관이라도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말이야.”
치안관이 귀찮아 하곤 짜증을 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상식 하나 알려주지. ‘통찰’은 동급의 어둠 계열 천부를 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능력이 고갈됐는지까지 감지해 낼 수 있어. 영원히, 꿈도 꿀 수, 없지, ‘통찰자’를 속이는 것 따위는.”
“진짜 같지 않으면, ‘통찰’을 모셔올 방법은 없어.” 가브리엘이 일어서더니 크로우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난 이제 그를 만나러 가야겠어——죽을 거라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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